시네마 천국

<우리는 형제입니다>의 두 가지 테마

김핸디 2015. 4. 19. 12:35




장진 감독의 <우리는 형제입니다>를 봤다. 수십년만에 만난 형제가 각자 무속인과 목사라는 독특한 설정. 그러나 개봉 직후 쏟아지는 악평에 보기를 주저해왔다. 사실, 장진은 <아는 여자> 이후 나를 만족시켰던 작품이 하나도 없었던지라, 그리고 최근의 <퀴즈왕>과 <미스터 프레지던트>같은 작품이 진짜 욕 나올정도로 후졌던 지라, "아, 장진은 진짜 이제 끝인가보다"하고 말았던 것이다.


그러나,


비오는 일요일 오전.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선택한 <우리는 형제입니다>는 뜻밖에도 너무 마음에 들었다. 물론, 장진 특유의 그 말장난 유머들은 "또 시작이네"라는 불만을 유발하기에 충분했지만, 자칫 소극으로 끝날 수 밖에 없었던 스토리를 김영애가 연기하는 어머니가 잡아주면서 영화는 휴머니즘을 담아내는데 성공했다. 그래서 뭉클했고, 그래서 감동적이었다.



이 영화를 보면서 내가 좋아하는 두 가지 테마에 대해서 생각해보았다. 너무도 흔한 장면이지만, 볼때마다 내 마음을 울리는 장면이 하나 있는데, 그것은 상대를 대신해서 죽음을 무릅쓰는 누군가의 모습을 보는 것이다. 최근 <미래를 걷는 소녀>에서도, 그 이유만으로- 남자주인공이 자신이 죽을거라는 걸 알면서도 소녀를 구하러 가는 장면에서 하염없이 눈물을 쏟았더랬다. 그리고 이번 <우리는 형제입니다>에서도, 동생을 위해 형인 조진웅이 죽음을 대신 각오하는 장면에서 어김없이 눈물이 터져나왔다. 왜인지 모르겠지만, 그런 장면들이란 언제 보아도 가슴을 훅 하고 치고가곤 한다. "남을 위해 죽기로 결심한다는 것" 그것이야 말로 정말이지, 인간이 인간으로서 존재할 수 있는 명장면이 아닌가. 



두번째는, 우연히 만난 선한 사람들의 선의로 어떻게든 계속해나가는 여정을 보는 것이다. 영화 <신부의 수상한 여행가방>에서도 그랬지만, 등장인물이 길거리에서 우연히 여러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의 선의로 인해 여정을 이어가는 것을 보는 것이 무척 흥미롭다. 이 영화에서도 좋았던 장면은, 어머니가 우연히 정치인의 장례버스에 올라타고, 노숙자를 만나고, 순찰도는 경비원을 만나면서 그들의 (의도치 않았던, 의도했던) 선의로 계속해서 안전하게 길을 떠나는 모습이었다.



 

내가 <우리는 형제입니다>를 보면서 가장 마음에 들었던 장면.- 우연히 순찰을 돌던 이한위가 돌산대교를 바라보던 김영애를 우연히 발견, 자신의 초소로 데려와 라면을 함께 먹는 모습.



물론, 장진의 <우리는 형제입니다>는 결코 잘 만든 영화의 반열에 오를수는 없을것이다. 그러나 나는 이 영화가 무척좋았다. 자신을 못 알아볼까봐 노심초사하는 조진웅앞에 아무렇지도 않게 "너희들 또 싸운거니" 하던 장면과, 동생이 넣어둔 성경 속 부적을 황당해하면서도 빼지 않는 비행기속 조진웅의 마지막 장면까지 내내 잔잔한 감동과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


누군가를 대신해서 죽을 수 있을까.


사람들은 모르는 사람들의 선의로 얼마간, 언제까지 여정을 이어갈 수 있는가.



따뜻하고 감동적인 영화. <우리는 형제입니다>를 통해서 내가 좋아하는 두 가지 테마에 대해서 오래 생각해보게 된다. 말 장난만 없었더라면 더욱 좋았을 휴머니즘 코미디. 장진은 이로서 다시 나의 '믿고보는 영화감독' 리스트에 다시 이름을 올려놓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