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앞의 생/끄적끄적

몰개성의 시대

김핸디 2018. 5. 19. 22:51





#1. 오랜만에 서점에 갔다. 궁금한 신간들을 적어서 갔는데 맙소사... 적어간 6개의 책 중에서 겨우 2개만 찾을 수 있었다. 작은 서점도 아니었다. 교보문고 잠실점. 그 큰 서점에 내가 궁금해하는 책은 찾을 수 없었다. 언제부턴가 교보문고에 가는일이 짜증으로 변했다. 어떤 책이 나왔을까, 이 저자의 시간이 나왔네? 하는 발견의 기쁨은 사라진지 오래다. 매대는 출판사들의 홍보의 장으로 변모했고, 책은 넘쳐나지만 '큐레이션' 같은걸 기대하긴 어렵다. 베스트셀러, 스테디셀러. 매번 그책이 그책이다. 도대체 왜 이 책이 없는걸까? 싶을 정도로 유명저자의 책조차 보이지 않으며, 이 책은 뭔데 매대에 놓여있어? 하는 SNS 인기류의 책들도 점차 늘어나고 있다.




#2. 영화관도 볼 영화가 없어진지 오래다. 멀티플렉스라는 이름이 무색하게도 한두개의 영화가 잠식해버린 극장. 영화를 고르는 기쁨도, 개봉을 기다리는 설레임도 없어졌다. 애초에 내가 보고싶어하는 영화는 개봉조차 하지 않으니까. 대도시에 살면서도 1시간여 시간을 들여 압구정정도는 나가야 원하는 영화를 볼 수 있다. 문화자본은 점점 커져가는데 현실에서 느끼는 문화생활은 어째 더 빈곤해지는 느낌이다.




#3. 대한민국엔 원래 취향, 취미같은게 없는 사람들이 가득했다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이러한 현상은 깊어지는듯 하다. 중년의 취미가 등산등으로 수렴한다면 2-30대의 취미는 음악페스티벌로 수렴되는게 아닐까. 똑같은 페스티벌에 똑같은애들이 계속 모여든다. 그 음악을 좋아하는 걸까, SNS 에 올라갈 사진을 좋아하는 걸까. 매번 음악페스티벌을 장르도 가리지 않고 가는 애들이 조금은 당혹스럽다.




#4. 물론 나 역시도 예외는 아니다. 언제부터 이렇게 됐을까. 대학시절에는 내가 좋아하는 책, 내가 좋아하는 영화, 내가 좋아하는 음악이 나름 명확했었는데. 여유가 있던 그때는 영화도, 음악도, 책도 찾아보고 향유했었는데. 모르겠다. 점점 더 취향을 찾기 어려워진 시대다. 직접 리스트를 짜지 않으면 베스트셀러나 읽을수밖에 없고, 멀리 발품을 팔지 않으려면 블록버스터만 봐야하고, 어렸을때부터 그저 듣는것만으로 행복해진 음악이 없다면 음악페스티벌을 전전할 수 밖에 없으리라.




#5. 내가 점점 흐려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영화도, 책도, 음악도, 나를 나답게 만들 수 없다면 우리는 무슨 힘으로 살아갈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