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앞의 생/끄적끄적

지독한 예체능 똥손에 대하여

김핸디 2018. 6. 17. 23:51



#. 초등학교 5학년, 단소 그리고 대금


내가 처음으로 배운 악기는 단소, 그리고 대금이었다. (물론 그전에 피아노도 배웠겠지만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초등학교 5학년때 국악반에 들어가서 단소를 배웠다. 머리에 산소가 모자라는 경험을 하면서까지 배웠던 단소. 덕분에 초등학교 6학년때는 옆반 친구들의 음악실기선생님을 자처하기도 했으니... 나름의 성과를 거두었다 하겠다. 그렇지만 대금은... 정말이지 어려웠다. 일단 소리는 잘 났다. (대금을 불면 플룻도 불 수 있다!) 그렇지만 손가락이... 대금의 구멍구멍은 왜 이렇게도 멀고 또 먼지. 초등학생의 손가락으로 해결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그렇게 중림남무황(맞나?) 를 오가며 불러댔지만... 결국, 대금은, 날카로운 예체능의 첫 실패로 남았다.


#. 고등학교 2학년, 드럼


고등학교땐 드럼을 배웠다. 교회를 다니는 애들이 그렇듯 뭔가 악기를 배워야 했다. 그래야 중고등부에 명함을 내밀 수 있었으니까. 나는 나의 예체능적 똥손을 일찍이 깨달았기에 개중 만만해보이는 타악기를 택했다. 그리고 드럼 학원을 약 3개월간 다녔다. 솔직히 되게 쉬울줄 알았다. 그냥 두드리면 되잖아? 하지만 처음부터 화려하게 드럼을 뚜딩길것이라는 예상과는 달리, 연습용 타이어만 냅다 쳐야했다. 그리고 드디어 드럼에서 연습을 시작하던 날... '드럼도 이렇게 어려운것이었다면 시작도 안했을것을' 이라는 후회만 남기고 말았다. 슬로우락까진 좋았지. 근데 기깎기가... 


#. 대학교 1학년, 피아노


대학교 1학년때 코드반주로 피아노를 다시 배웠다. 정확히는 키보드라 하겠다. 처음에 코드는 너무 신세계였다. 피아노는 악보보는 것도 너무 힘들었는데 코드는 영어만 읽을 줄 알면 되니까 너무 쉬웠다. 그리고 코드 몇개만 배우면 몇곡은 딩동딩동 쳐내는 내 손가락이 너무 신기했다. 아... 이거야, 이거라고! 코드로 무려 월광 같은 곡을 비슷하게 쳐낼때는 '나는 천재로구나' 하는 희열을 느끼기도 했다. 그나마 관악기, 타악기보다는 내가 현악기에 소질이 있구나... 라고 느낀 순간이었다.


#. 대학교 2학년, 우쿨렐레


피아노로부터 배운 자신감 때문이었을까. 나는 우쿨렐레에 도전했다. 초보인주제에 30만원 가까이의 우쿨렐레를 구입. 우쿨렐레도 코드기반이고 처음에는 너무 쉽기 때문에 악기에 대한 자신감이 하늘을 찔렀다. 너에게 난, 나에게 넌을 친구와 함께 연주하며 뮤지션이 된것같은 착각에 빠졌던 시기. 하지만 어느 순간이 지나자... 드디어 임계점이 찾아왔다.


#. 대학교 3학년, 기타


우쿨렐레도 다 못쳤던 주제에, 왜 기타를 배우겠다고 한걸까. 그것은 바로 드라마 <메리 대구 공방전>의 영향이 컸을 터. 나는 드라마속 주인공 메리메리 퐝메리처럼 노을지는 강당에 앉아 기타를 치고 싶었다. 그래서 동네 문화원에 등록하여 3개월간 기타를 배웠다. 그러나 내가 칠 수 있는 유일한 곡은 연가와 스탠바이미가 전부였다. Orz



.... 예체능 똥손인 주제에 많이도 시도해왔다. 그리고 이 글을 쓰는 이유는, 내가 지금 또, 피아노가 배우고싶기 때문이다. 전자키보드를 사서 헤드폰을 끼고 나만의 피아노 연주를 밤마다 해보면 어떨까. 아아 제발... 나는 도대체, 못하는 주제에 왜 이렇게 해보고싶은게 많은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