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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ene

죽은왕녀를 위한 파반느 中

by 김핸디 2011. 10. 2.

나는 말없이 쇼핑백을 챙겨 들었고, 한 손에 세 개씩 더... 그녀의 짐을 뺏어 들었다. 뒤돌아보지 않아도 당황해하는 그녀의 기색을 역력히 느낄 수 있었다. 저기... 하고 그녀가 말했다. 괜찮아요 주세요. 가야 할, 꽤 먼 거리가 남았으므로 나는 걸음의 속도를 높이며 큰 소리로 외쳤었다. 여자가 들기엔 너무 무거워요. 지나가던 택시와 서쪽으로 흘러가던 구름들... 그리고 좀 더, 흔들리던 길옆의 코스모스며... 손가락의 통증... 내딛던 운동화의 감촉과... 뒤따라 종종 걸어오던 가벼워진 그녀의 발자국 소리가 생각난다.
그 순간 왜 그런 행동을 했는지는 지금도 알 수 없다. 다만 피고 지던 꽃 같은것... 해서 사라진 인생의 환 하나를 새삼스레 떠올리는 기분이다. 그녀도 나도 열아홉 살이었다. 누구에게나

스스로도 믿기지 않는 시절이 있는 법이다.



- 박민규, 죽은왕녀를 위한 파반느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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