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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네마 천국

시련줄게, 행복다오 <슬럼독 밀리어네어>

by 김핸디 2010. 9. 21.



 중학교 1학년때, 우리 중학교를 수석으로 들어왔으며, 아니나 다를까 1등이란걸 놓쳐본적이 없는 친구와 나는 단짝이었다. 당시 반에서 5등을 하던 나로서는 가끔씩 그 친구에게 '너는 어떻게 맨날 1등만 하느냐' 라며 질투어린 시선을 보내곤 했었는데 그 때마다 친구의 반응은 한결같았다. '너 잘 때 나는 공부하잖아.' 물론, 나는 그 말을 듣고도 계속 잤다. 당연히, 나는 계속 5등에 머물렀고, 내 친구는 그 후로도 계속 1등을 하며 공부로 이름을 날렸다.

 누군가의 성공을 볼 때 우리는 언제나 '과정'에 주목하기 보다는 '결과'에 주목한다. 걔 이번에도 전교 1등했대, 고승덕은 외시 사시 행시를 모두 패스했다던데, 유수연은 연봉이 10억이래, 조앤 롤링은 해리포터로 인생역전했지... 우리는 누군가의 성공담을 들으면 입을 쩍 벌린채로 연신 그들이 이루어 낸 업적만 얘기하기에 바쁘다. 하지만 전교 1등을 하던 내 친구는 자지 않고 공부했고, 고승덕은 시간이 아까워서 밥을 갈아서 마셨으며, 유수연은 문을 걸어잠그고 영어에만 은둔했고, 조앤 롤링은 끔찍한 시련의 시간들을 겪었다. 그러니까, 그들에게 주어진 성공 모두는 '어쩌다 떨어진 행운' 이 아니라 '치열하게 노력한 과거와 시련과 절망을 극복하고 얻은 댓가' 였던 것이다.

 여기, 한 명의 소년이 있다. 빈민가 출신 일자무식의 콜센터 심부름꾼, 자말. 그는 사랑하는 여자가 자신을 지켜보리라는 희망을 안고 퀴즈쇼에 출연한다. 그리고 정답, 정답, 정답... 마침내 그는 백만장자가 된다. 대체, 어떻게? 나도 궁금했다. 혹 당신도 궁금한가? 그렇다면 그가 어떻게 해서 모든 퀴즈를 맞추고 어마어마한 상금을 획득했는지 그 '과정'을 한 번 들여다보자. 그렇다, 당신과 내가 그렇게도 말하기 좋아하는 결론이 아니라 과정 말이다.

 지켜보는 우리에게는 얼마간의 돈이 걸린 퀴즈문제의 답에 불과했지만, 자말에게는 퀴즈쇼의 모든 문제가 자신이 살아온 치열한 삶의 역사의 단편이었다. 어머니를 잃은 댓가로 맞춘 종교 문제, 하마터면 자신의 눈을 잃을뻔한 경험으로 맞춘 문학 문제, 상상하기도 싫을 끔찍한 총성과 함께 맞춘 상식문제, 그리고, 그리고, 그리고... 계속해서 이어지던 자신의 가장 고통스러운 기억들과 맞바꾼 퀴즈쇼의 문제들. 그렇게 아무것도 가진것없던 소년은 자신의 전 생애를 담보로 퀴즈쇼의 정답을 하나 둘 씩 맞추어간다.

 여기서 퀴즈쇼는 그저 TV프로그램의 한 종류가 아니다. <슬럼독 밀리어네어> 속 퀴즈쇼는 인생의 행복을 갈구하는 우리 모두가 꿈꾸는 성공에 대한 '은유' 로서의 의미를 지녔다. 그렇다면 우리가 성공하는 방법은? 맞다. 바로 자말처럼 고통스럽고 끔찍한 현실에서라도 하루하루를 정말 열심히, 그리고 담담하게 살아가는것이다. 감이 잡히는가? 백만장자가 되길 원하는 당신, 인생의 진정한 행복과 성공을 원하는 우리들에게 주어진 '퀴즈쇼' 에 대한 정답은 지금의 고통스러운 삶과 시련들에서 나온다는 말이다. 

 모든 일에는 댓가가 필요하다. 그냥 공짜로 주어지는것은 세상에 아무것도 없다. 성적과 수면량을 바꿔야하고, 노동과 물질을 바꿔야하고, 믿기 어렵겠지만 시련과 행복을 바꿔야한다. 삶의 모든것이 교환이라면, 내가 행복을 가지는 대신 누가 내 시련을 가져가게될까? 그것은 그들에겐 미안한 얘기겠지만 현재를 대충대충살고, 힘들다고 여기까지와서 되돌아가고, 요행을 바라면서 세상을 비관하는 자들에게로 간다. 자, 생각해봐라. 과연 자말이 최종상금을 받는 그 인생역전 절정의 바로 그 순간에 그의 형이 목숨을 잃었던것이 과연 우연의 일치였을까. 그건, 똑같은 현실속에서도 바르게 잘 자라왔던 자말과 반대로 인생을 삐뚤게 살아왔던 그의 형이 시련과 행복을 주고받는 거래의 순간인거다. 형은 모든 절망과 시련을 안은채로, 동생은 모든 희망과 행복을 안은채로.

 나의 행복과 타인의 불행을 맞바꾼다. 그것은 얼핏 보기에는 잔인해 보일런지 몰라도 가장 공정한 거래 중 하나다. 공부를 열심히 했던 내 친구가 1등을 하고 내가 그 친구를 부러워했던게 공정하지, 공부도 덜한 내가 1등을 하고 내 친구가 나를 부러워하게되는것이 결코 공정한 일이 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주어진 현실은 바꾸지 못할지언정 우리에게는 언제나 주어진 현실을 받아들일 때 사용하는 두 가지의 '선택권' 이 있다. 착한 마음으로 열심히 살거나, 삐뚤어진 마음으로 대충 살거나. 그리고 그 선택권에 따라 우리는 행복을 얻기도 하고, 불행을 넘겨받기도 할 것이다. 

 환경만을 탓하며 쉬운 유혹에 빠져 세상을 비관하지 말자. 우리에게 주어진 절망, 고통, 시련, 아픔은 우리는 모르지만 신이 우리에게 '위대한 성공'을 상금으로 걸고 내는 퀴즈쇼의 힌트들일지도 모른다. 퀴즈쇼에 출연하게 될 그날 까지만, 지금 우리가 가지고 있는 정답들을 잊지 않도록 노력하며 살아가자. 우리의 삶이 언젠가 우리에게 위대한 성공이나 절정의 행복한 순간을 걸고 문제의 답을 요구한다면, 그 때 조용히 웃으며 답을 얘기하면 된다. 그때가 오면, 우리도 자말처럼 '슬럼독 밀리어네어' 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