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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네마 천국

그도 좋고, 그녀도 좋은데 어쩌라구 <푸치니 초급과정>

by 김핸디 2010. 9. 26.


#1. 동성애자는 '태어나는가' 아니면 '만들어지는가'

네가 이성애자가 되고싶어서 된건 아니잖아? 어느 영화 속 동성애자가 이성애자에게 했던 대사다. 난 여자 앞에서 홀딱 벗고 서있어도 아무렇지도 않아요. 이건 어느 연극 속 동성애자의 대사였다. 나는 그래서 그들을 받아들여야겠다고 생각했다. 물론 누군가의 '성 정체성' 이라는게, 내가 받아들이고 말고 할 성질의 것은 아니었지만, 그리고 나의 인정과는 무관하게 그들은 한 인격체로 당당히 존중 받아야겠지만, 그 영화를 보고 연극을 봤던 당시의 나는 그렇게 느꼈었던거다. 아, 동성애자는 동성애자로 태어나는구나.

하지만, 내가 읽은 어떤 심리학책에서는 '동성애가 고착되는 네가지 경우' 에 의해 동성애자는 '만들어진다' 라고 이야기하고 있었다. 그 네 가지경우란 1) 최초의 성경험이 동성 2) 동성들만의 공간에서의 고립 3) 부모의 성역할이 반대 4) 이성과의 불쾌한 성경험 에서 비롯된것이었다. 그리고, 일련의 영화나 소설에서 이성애자들이 이런 저런 과정속에 동성과의 사랑을 느끼기도 하는것을 볼 수 있었다. 어라? 그래서 나는 생각을 바꿨다. 아, 동성애자는 사회적으로 만들어지기도 하는구나.

#2. 양성애자는 가능한가

만들어지거나 태어나거나, 동성애자로 사는 사람들을 '그냥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나니 이제는 '양성애자' 라는 존재가 나를 혼란스럽게 만들기 시작했다. 물론, 사회적으로 '만들어지는' 동성애자를 생각한다면 이성애에서 동성애로의 이동을 고려, 양성애성향을 가질 수 있다는것은 일면 타당해 보였다. 하지만 내가 이해가 안되는것은, 동성애자라고 스스로를 규정해놓고 이성과의 버젓이 성관계를 가진다거나 하는 동성애에서 이성애로의 전이 같은 경우들이었다. 그러니까 내 생각으로는 '여자한테는 아무런 감정이 없어' 라고 선언했던 게이가 여성과 은밀한 관계를 가질 수 있는것이 가능한 일이라고는 도저히 이해할수는 없었던 것이다.

#3. 그도 좋고, 그녀도 좋은데 어쩌라구

영화 <푸치니 초급과정>은 이러한 나의 의문을 다시금 건드려주는 영화였다. 주인공 알레그라는 레즈비언. 그러나 그녀는 곧 필립이라는 매력적인 남자를 만나 사랑을 나누고, 동시에 그레이스라는 여성을 만나 애정행각을 벌인다. 알레그라는 끊임없이 자신의 '성 정체성' 과 필립에게 끌리는 본능사이에서 갈등하지만, 결국엔 마음 가는대로 필립도 그레이스도 사랑하고 만다. 하루에도 여러번 두 남녀 사이를 오가며, 행복해죽겠다는 표정의 그녀. 그녀는 낮에는 남자를 만나고 밤에는 여자를 만나며 속으로 이런류의 환호성을 지른다. 맙소사! 둘 다 가질 수 없다고 누가 그래?

학창시절 열병에 가깝게 학교에서 인기많은 '오빠' 들을 사랑했던 짝사랑의 경험과, 인연일수도 있었으나 결국은 스쳐지나간 '미완성의 연인' 들만을 지닌 얼치기 성인인 내가 아직 '사랑이 무엇인지' 논하기에는 이르다는것은 인정한다. 하지만, 이 영화를 보면서 사랑은 '성 정체성' 으로 규정지어지는 '태도' 를 넘어서는 '본능적 이끌림' 이며, 그렇기에 어떠한 한계나 경계로도 제한할 수 있는게 아니구나,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되었다. 푸치니는 여성을 혐오하면서도 페미니스트였고, 영화 속 주인공 알레그라는 레즈비언이면서 남성과 사랑을 나눈다. 흠, 그게 어떻게 가능한 일이냐고? 모르겠다. 머리로는 잘 이해가 안 되는데, 영화를 보고나니 그럴수도 있는게 사람일이 아닌가 싶어진다. 얘도 좋고, 쟤도 좋고, 무엇보다도 걔도 정말 좋아. 아, 정말이지 사람 마음이란 설명이나 이론따위로는 얘기할 수 없는 성질의 것이 아닌가. '함께 늙어가고픈 인생의 동반자' 를 찾기까지 남여를 오가며, 좌충우돌하는 한 여자의 성장기가 재밌게 느껴지는 영화 <푸치니 초급과정>. 간만에 재미있는 스크루볼 코미디를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