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좌표
칼 포퍼, 점진적 공학
by 김핸디
2012. 1. 18.
유토피아주의는 사회악을 뿌리째 뽑아버려야 한다는, 세상에 품위 있는 것들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비위에 거슬리는 사회제도를 완전히 근절해버려야 한다는 확신이다. 그것은 비타협적 급진주의이다. ....(중략)
포퍼는 다른 방법이 있다고 생각했다. 그가 '점진적 공학' 이라고 이름 붙인 사회개량의 길이다. 점진적 공학을 채택하는 정치가는 이상적 사회의 청사진을 가지고 있을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다만 어떤 경우에도 최대의 궁극적 선을 추구하고 그 선을 위해 투쟁하기보다는 최대의 악과 긴급한 악에 대항해서 투쟁한다. ...(중략)
유토피아적 공학인 사회혁명은 사회 전체의 근본적 재구성을 추구하지만, 인간이 영원히 벗어날 수 없는 경험과 지식의 제약 때문에 더 큰 악을 불러들일 위험이 있다. 더 안전하고 효과적인 방법은 최고의 추상적인 선을 위해서가 아니라 가장 긴급하고 구체적인 악과 싸우는 점진적 공학이다. ...(중략)
그런데 포퍼의 견해에는 논리적인 허점이있다. 사회혁명과 점진적 개량을 양자택일의 문제로 보았다는 점이다. ... 사람들은 누구나 점진적 공학을 좋아한다. 점진적 공학으로는 문제가 되는 불평등과 사회악을 전혀 해결할 수 없다고 판단할 때 비로소 사회혁명으로 눈을 돌리게 된다. ... 실제 역사에는 둘 모두가 공존했다. 그리고 거대하고 근본적인 변화를 일으킨 것은 점진적 개량이 아닌 사회혁명이었다.
- 유시민, <국가란 무엇인가> 제 6장 혁명이냐 개량이냐 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