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민규3 죽은왕녀를 위한 파반느 中 나는 말없이 쇼핑백을 챙겨 들었고, 한 손에 세 개씩 더... 그녀의 짐을 뺏어 들었다. 뒤돌아보지 않아도 당황해하는 그녀의 기색을 역력히 느낄 수 있었다. 저기... 하고 그녀가 말했다. 괜찮아요 주세요. 가야 할, 꽤 먼 거리가 남았으므로 나는 걸음의 속도를 높이며 큰 소리로 외쳤었다. 여자가 들기엔 너무 무거워요. 지나가던 택시와 서쪽으로 흘러가던 구름들... 그리고 좀 더, 흔들리던 길옆의 코스모스며... 손가락의 통증... 내딛던 운동화의 감촉과... 뒤따라 종종 걸어오던 가벼워진 그녀의 발자국 소리가 생각난다. 그 순간 왜 그런 행동을 했는지는 지금도 알 수 없다. 다만 피고 지던 꽃 같은것... 해서 사라진 인생의 환 하나를 새삼스레 떠올리는 기분이다. 그녀도 나도 열아홉 살이었다. 누구에게.. 2011. 10. 2. 죽은왕녀를 위한 파반느 中 모두가 열망하는 파티에 집에서 입던 카디건을 걸치고 불쑥 갈 수 있는 인간은 진짜 부자거나, 모두가 존경하는 인간이거나 둘 중 하나야. 존재감이 없는 인간들은 아예 가지 않아. 자신을 받쳐줄만한 옷이 없다면 말이야. 파티가 끝나고 누구는 옷이 좀 그랬다는 둥, 그 화장을 보고 토가 쏠렸다는 둥 서로를 까는 것도 결국 비슷한 무리들의 몫이지. 결국 열등감이란 가지지 못했거나 존재감이 없는 인간들의 몫이야. 알아? 추녀를 부끄러워하고 공격하는 건 대부분 추남들이야. 실은 자신의 부끄러움을 견딜 수 없기 때문인 거지. 안 그래도 다들 시시하게 보는데 자신이 더욱 시시해진다 생각을 하는 거라구. 실은 그 누구도 신경조차 쓰지 않는데 말이야. 보잘것없는 여자일수록 가난한 남자를 무시하는 것도 같은 이유야. 안 그.. 2011. 10. 2. 너, 조건없이 사랑만 할 수 있어? <죽은왕녀를 위한 파반느>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 박민규 지음/예담 나는 언제나 사랑은 그런것이라고 생각해왔다. 그것은 느닷없이 찾아와서, 마음의 문고리를 흔들고, 아무리 열어주지 않으려고 저항해도, 결국은 마음의 틈새를 비집고 들어와버리는것이라고. 하여, 나의 마음속엔 언제나 누가 보더라도 사랑에 빠질만한 요소를 다 갖추고 있는 사람을 사랑하는것은 진정한 사랑이 아니라고 여겼고, 처음부터 어떠한 인연을 전제로 한 소개팅같은것은 진정한 사랑에 있어서는 말도 안되는 요소라고 생각해왔다. 아직도 불완전한 인간인 내가, 겨우 사랑에 대해 촉발할 수 있는 이미지는 드라마속이나 영화속같은 근사한 모습에 불과하다. 아무리 찢어지게 가난해도, 여자는 모름지기 김정은 정도의 깜찍함을 지녔고, 제 아무리 세상에서 무지렁이 취급받는 남자지만 .. 2010. 9. 22. 이전 1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