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새해 첫 여행지를 목포로 정했다. 딱히 이유가 있어서는 아니고... 가능한 선택지들 중에 가장 '그럴듯한' 포스를 풍겼기 때문이었다. 왠지 바다가 보고싶었으나 강원도 행 버스들은 다 매진이었다. 경상도는 왠지 멀다는 느낌이 들어 선택지에서 패스. 전라도에 가야겠다고 생각하고보니 남아있는 버스는 목포나 전주뿐이었다. 하지만 전주는 나도 여러번 갔고, 친구도 지난주에 갔다온 곳이었다. 결국 목포로 결정! 생각치도 못한 목포여행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밤 11:55분 출발. 목포버스터미널에 도착하니 새벽 4시에 가까운 시간이었다. 당연히 '찜질방같은게 있겠지' 라고 생각했지만... 없었다. 할 수없이 그닥 내키지 않는 모텔에서 2014년의 첫 밤을 지새워야만 했다. 마치 홍상수의 영화를 찍을것같은, 다방커피를 시켜야할 것 같은 그런 방. 방비는 3만원. 싼만큼 시설같은게 좋을리는 없었지만, 그럭저럭 하룻밤을 날 만큼은 괜찮았다. 방바닥도 뜨겁고, 뜨거운물도 콸콸 나오고. (너무 당연한가=_=)
* 나중에 확인해보니 터미널에서 왼쪽으로 쭈욱 가면(맥도날드 방면) 찜질방이 하나 있더라. 다음에 가면 꼭 그곳을 이용하는 걸로!
푹 자고 본격적인 여행에 나섰다. 우리는 말 그대로 '즉흥적' 으로 떠난 여행이었기 때문에 목포에 뭐가 있는지, 그 흔한 관광명소가 어딘지도 모르고 있는 상태였다. 그래서 일단 관광지도를 찾아보기로 했다. 대충 레이다를 돌리니 들어오는 한 곳. 삼.학.도. 유달산과 각종 해양 박물관이 모여있고, 무엇보다 바다가 보이는 '삼학도' 라는 곳이 괜찮을 것 같아 무작정 그곳으로 향하기로 했다.
여기서 잠깐. 목포는 사랑이다. 왜냐고? 목포가 사랑인 이유는 첫번 째, 교통이 무척 편리하다는 점이다. 터미널 앞에서 관광의 중심인 '삼학도' 가는 버스를 심심찮게 만날 수 있다. 지방의 경우에는 후불 교통카드가 안 먹히는 경우가 많은데, 목표는 후불 교통카드도 오케이. 결국, 터미널에서 바로 '삼학도' 가는 버스를 발견. 단숨에 삼학도로 향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이후의 여정은 모두 보도로 가능했으니... 이 얼마나 편리한 관광의 동선인가!
삼학도에 도착해서 가장 먼저 간 곳은 '목포어린이바다과학관' 이었다. 원래는 가는김에 있는 '김대중 노벨평화상 박물관'도 들려보고 싶었는데 1월 1일은 휴관이었다. Orz. 여튼, 그렇게 선택한 '목포어린이바다과학관' 은 '어린이' 라는 코드에 맞게 체험할 수 있는 볼거리가 그득그득했다. 입장료가 3천원인데, 적어도 그 돈값은 충분히 한다고 느꼈을 정도. 우리는 메이데이를 외쳐대며 선장체험을 했고, 바다 암흑체험을 했고(이건 완전 커플을 위한 공간이던데?!), 무엇보다 가장 즐거웠던 '해양뉴스' 체험을 했다. (해양뉴스체험이란 프롬프터로 뜨는 바다에 관한 뉴스를 읽으면, 크로마키화면을 이용해 내 모습이 뉴스에 나오는것처럼 보이는 것이다.)
수산시장 가던길에 만난 '목포요트마리나'
줄지어 있는 요트를 구경하는 재미도 쏠쏠하다
그렇게 한 시간여를 놀고나서 향한곳은 '목포종합수산시장'. 금강산도 식후경이라고 하렷다! 우리는 위풍당당하게 산낙지를 먹겠다고 <어부의 집>이었나, 하는 횟집으로 향했다. 그리고 그곳에서 발견한 산낙지 한 접시의 가격은 삼.만.원! 하앍. 둘이 먹으면 간에 기별도 안 갈 산낙지가 삼만원이라니... 잠시 망설였지만, 나와 내 친구는 그 즈음 계속
"살아있는게 먹고 싶다고 했다"
- 영화 <올드보이> 中
이런 모드였기 때문에 산낙지를 포기할 수는 없었다. 그렇다. 우리는 산낙지에게는 좀 미안한 얘기긴 하지만, 신년부터, 새해 벽두부터, '살아있는게 먹고 싶' 었다. 그래서 결국 낙지비빔밥 2개와 산낙지 한 접시를 시켰다. 총 5만원 Orz. 그러나, 목포에까지 와서 산낙지를 먹지 않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목포에 왔으니까! 목포 낙지를 먹어야지!!
그리하여, 영접하게 된 산낙지느님. 하앍하앍하앍하앍.
처음에는 눈에 들어오는 양에 '에게? 이게 삼만원이라고?' 라며 실망을 금할 수가 없었지만, 먹다보니 꽤 양도 있는것 같고 무엇보다 참기름 양념이 정말정말정말 맛있었다. 츄릅... 사진만 봐도 다시 먹고싶어진다. 내가 목놓아 부른 그 이름, 산낙지여~
그렇게 점심을 먹고 향한곳은 유달산! 목표를 대표하는 산이라서 가보기로 한건데, 가는길에 우연히 목표를 대표한다는 빵집 '코롬빵제과' 를 만날 수 있었다. '아흑 이럴수가. 가는 발걸음에 가보고 싶었던곳이 다 있다니!' 우리는 우리의 럭키함을 칭송하며 그곳으로 향했다. 치즈바게트가 유명한 곳이라는데 매대에 없어서 일단 슈크림과 꽈베기를 사서 유달산으로 Go!
사실, 나는 산 과는 그리 친한편이 아니다. 체력도 저질이고, 하여 그 유명한 설악산이나 지리산같은곳에도 가보지 못했다(않았다). 그러나 유달산은 해발이 그리 높지않아(228m) 도전의식을 불러일으켰다. 새해에 산 정상에 오른다니! 뭔가 의미있는 여정이 될거라는 생각이 한 몫 더 하기도 했다.
그리하여 오른 유달산 정상! 비록 고지는 아니라지만, 나에게는 정말 의미있는 등반이 되었다. 내가 정상이라니... 내가 산 정상에 오르다니! 부츠를 신고서도 엄홍길 대장처럼 산을 오르던 내 친구와는 달리, 가는 내내 헉헉거리며 미친듯한 호흡을 선보이는 나였지만... 다리를 부여잡고, 결국엔 차라리 네 발로 걷고 싶다던 나였지만... 어찌됐든 좌우당간 정상에 도착하노라니 그 감흥이 남달랐다. 특히 유달산은 한 쪽으로는 목포시내의 전경이 다 내려다보이고, 한 쪽으로는 다도해 바닷가가 보이며, 다른 한 쪽으로는 반대편의 이등바위를 비롯한 산의 모습이 내려다보이는 다차원 르네상스뷰를 선보이고 있었다. 고개를 어디로 돌리던 "캬! 쥑이네~"(그래 막걸리가 무척 땡겼다...왜 산에 오르면 막걸리가 당기는 것이란 말인가?) 하는 반응이 나오지 않을수가 없는 그런 view!
그러나 사실 우리가 목표로 한곳은 일등바위 정상이 아니라 분위기가 철철 흘러 넘치는 낙조대였기 때문에 서둘러 발걸음을 옮기기로 했다. 낙조대에는 어떻게 가지? 우연히 만난 아저씨 한분은 깎아지른 절벽같은 곳을 손으로 가르키며 이곳으로 가면 된다고 알려주셨다. 헐...헐..헐... 난 솔직히 그 절벽을 보는 순간 포기하고 내려가자고 말하고 싶었다. 그러나 엄홍길이라도 빙의된듯한 내 친구가 바위에 동여매져있는 밧줄을 잡고 벌써 저만치 내려가고 있었으니... 야, 이녀나... 누굴 새해 첫날부터 황천길로 안내할 셈이냐! 라고 외치고 싶었지만, 산 정상을 같이 오른 이들에게는ㅡ 김보성만큼은 아니더라도 '의리' 가 있는 셈이어서 나도 투덜거리며 뒤 따르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하여 새해첫날부터 <클리프행어>를 찍으며 도착한 낙조대. 나는 정말이지 가는 길에 다리가 풀려버려서... 로보트처럼 이상하게 걸으며 도착한 그 낙조대! 그러나 고생끝에 낙이온다...라고 했던가. 그렇게 찾은 낙조대는 정말이지 환상적으로 아름다웠다.
목포는 여기서 다시, 정말이지 사랑이다. 왜냐하면 둘째, 사람들이 무척 친절하기 때문이다. 유달산 어떻게 가요? 라고 묻자 자신이 모르면 저만치 걸어가던 남편을 불러서까지 길을 가르켜주신 아주머니, 낙조대 어떻게 가요? 라고 묻자 밧줄을 산 사나이처럼 쥐고 오르다가 한참이나 다시 내려가면서까지 알려주신 아저씨, 낙조대에 도착하자 "새해에 뭣한다고 목포까지 왔어라?"라며 사과한쪽을 건네주신 아주머니까지... 우린 연실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를 외칠 수 밖에 없었고, 새해 첫날 부터 사람들의 온정으로 인해 더없이 행복할 수 밖에 없었다.
낙조대에서 저 멀리 목표대교를 감상중인 겨울녀자
그리고 여기서, 아까 사왔던 '코롬방 제과'의 맛을 보았는데... 캬! 꺅! 크! 어흐! 라는 말이 나올정도로 맛있었다. 특별한 맛이 있는건 아니고, 그냥 재료가 정말 풍성하다는게 느껴져서 좋았다. 예를 들어 슈크림빵에는 정말 슈크림이 그득그득하게 많았다. 파리바게트에서 먹는 슈크림은 외곽을 다 베어먹고 나서야 겨우 중심축에서 슈크림을 찾을 수 있는 수준인 반면... 코롬빵 제과의 슈크림은 그냥 먹는순간 슈크림이 솨아하고 입가에 밀려들어왔다. 물론, 중심으로 갈수록 그 슈크림의 양은 점점 더 많아지고 ㅠㅠ 나는 점점 더 행복해지고 ㅠㅠ 이건 뭐냐며 기쁨으로 덩실덩실 어깨춤이 나오려고 하고 ㅠㅠ
한 입 베어물고, '어? 이건 인증사진을 남겨야겠다' 싶어 찍은 '코롬방 제과' 슈크림빵
여기서 목포는 다시, 사랑이다. 셋째, 낙지는 물론이거니와 빵집까지 맛있는 목포라니.... 이 얼마나 감격스런 맛의 향연이란 말인가. 나는 다시 여기서 목포의 눈물... 그러니까 덩실덩실 기쁨의 눈물을 흘려야만 했다. 어흑, 이게 뭐야 맛있쟈나! 슈크림 넘치쟈나!
사실, 그렇게 끝인 줄 알았다. 바다도 봤고, 산 정상에도 올랐고, 산낙지랑 코롬방 제과도 접수완료 했으니, 이제는 '집에 가야지...' 하고 낙조대를 내려왔는데... 뙇! 또 한 없이 바다가 펼쳐져 있는 게 아닌가. 햇살이 반짝반짝 빛나고- 저 멀리 이문세의 음악은 들려오고- 사람들은 가족단위로 모여서 호젓하게 산책하는 그런 바닷가!!! 게다가 그 바닷가 바로 옆에는 터미널로 가는 버스정류장이 위치하고 있어, 따로 시간을 계산하고 그 바닷가에서 놀 필요도 없었다. 실컷놀다가 버스만 타면 한번에 다시 목포터미널로 돌아가는 그런 구조였다 T_T 오 지쟈스, 목포로 인도하여 주심을 감사합니다!
우리는 그렇게 마지막까지 오롯이 바닷가를 즐겼다.
그렇게 바닷가를 거닐다가, 조개껍질을 주워보다가, 바다를 마음속에 가득품고 목포를 떠났다. 원스톱으로 오고가는 교통 시스템과, 입에 대는것마다 맛있었던 음식들과, 친절한 사람들과, 소란스럽지 않지만 수려한 산과 바다까지. 이 모든것을 하루안에 누릴 수 있는 여행지가 또 어디에 있을까.
처음엔 '괜히 목포가는거 아니야?' 라는 의심만 가득했었지만... 지나고나니 하루가, 새해 첫날이, 너무나 알차서 행복한 기운이 꽉 들어찬듯한 기분이 든다. 버스에서 오는 내내 '첫 시작이 좋은 걸 보니 운수대통하려나 보다!' 라며 기분좋았던 2014년의 첫 여행. 누군가 내게 겨울 여행지는 어디가 좋냐고 물어온다면, 나는 산과 바다를 모두 품을 수 있는 목포로 그 첫 발걸음을 내딛는것이 어떠냐고 대답하고 싶다.
ps. 우리가 좋았다고 해서 남들도 좋다는 법은 없지만... 발길닫는 대로 걸어다녔지만 지나고보면 참 완벽했던... 목포여행 당일치기 일정 추천
목포버스터미널 도착 -> 앞에서 삼학산 가는 버스 아무거나 타고 삼학산역 하차 -> 목포어린이해양박물관 구경 -> 목포종합수산시장으로 이동하여 산낙지 쳐묵 -> 유달산 가는길에 코롬방제과 접수 -> 유달산 정상 -> 일등바위에서 절벽타고 클리프행어 찍으면서 낙조대로 이동(솔직히 이건 다시 하라면 못할 거 같다...) -> 낙조대에서 코롬방제과 빵 흡입하며 신선놀음 -> 내려오면 유원지 바닷가 뿅뿅 신나게 놀다가 그 앞에서 목포버스터미널가는 버스 타고 집으로 꼬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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