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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네마 천국

이야기로만 사랑에 빠질 수 있을까, 아카데미 극본상 수상작 영화 <허Her>

by 김핸디 2014. 3. 15.




누군가를 좋아하게 되는 순간은 언제일까. 천박한 인간인 나는 대개 외모적인 부분에서였던적이 많았지만... 누군가를 '인간적으로' 마음에 담게 되는 순간은 그 사람의 '이야기'를 들었을 때였다. 회사를 그만 둔 이유를 들었을 때, 가족사를 듣게 됐을 때, 사람에게 상처받은 이야기를 들었을 때, 그 사람의 고유한 '이야기'를 들었을 때 그 사람이 인간적으로 무척 좋아지곤 했다.



영화 <허Her> 속 남자주인공은 이혼절차를 밟고있다. 그는 행복했던 결혼시절을 떠올리며 현재의 외로움속에서 산다. 그런 그에게 그의 모든것을 다 알아차리고 마음을 읽어주는 컴퓨터 운영체제 '사만다'가 나타난다. (영화의 배경은 인공지능이 보편화된 미래의 세계다) 그는 사만다를 만나면서 차차 삶의 활기를 되찾아가기 시작한다. 그녀는 그가 바라던 완벽한 이상형. 그의 말에 귀 기울여주고, 그의 기분을 읽어주고, 음악을 추천해주고, 마음에 드는 글을 찾아 읽어주기까지 한다.



실체가 없는 운영체제일뿐이지만, 그는 사만다와의 대화를 통해 점점 더 그녀에게 빠져든다. 아침부터 잠들때까지- 모든 일상을 나누고, 그의 지인들하고도 인사를 나누는 그녀. 그러나 그녀를 향한 마음이 깊어질수록, 그와 그녀는 점점 더 힘들어질 뿐이다. 갈수록 사람의 감정을 닮아가는 운영체제 앞에서 그는 혼란스럽고, 그녀와 싸우고 멀어지기까지 한다. 그리고 모든 연인들이 그렇듯, 그들에게 남는 단 하나의 길은 이별 뿐이다. 보내줘야 하는 그와 보내달라 말하는 그녀. 이야기만으로 시작된 이 사랑은, 정말 사랑이라고 말할 수 있는걸까?



영화는 무척이나 재미있었다. 꽤나 철학적인 주제(이를 테면 '소통' 이라든가)를 다루고 있지만 한시도 지루할 틈이 없다. 목소리로만 출연하는 스칼렛 요한슨의 매력은 발군이며, 남자주인공으로 열연한 호아퀸 피닉스 역시(처음엔 그인지도 몰랐다!) 관록의 배우다운 연기력을 펼친다. <아메리칸 허슬>에서 '이 구역의 미친개' 정도로 나왔던 에이미 아담스 역시, 털털하고 따뜻한 다큐멘터리가 감독으로 분한 모습이 무척이나 인상적이다. (아, 진짜 에이미 아담스 왜 이렇게 예쁘냐고!)



영화 초반은 마치 로맨틱 코미디와도 같은 달달함이 넘쳤다. 그래서 '나에게도 저런 운영체제가 있었으면!' 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러나 영화를 다 보고나서는 결국 아픈 마음을 부여잡아야만 했다. 운영체제든 사람이든 누군가에게 마음을 주는 것은 곧 아픔을 동반하는 일이라는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내가 사랑하는 이가 하나의 인격체라는 것을 분명히 알면서도, 그가 내뜻대로 움직여주기만을 바라고, 내 마음과 달리 행동할때는 한 없이 서운해지고 하는 감정들.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그래서 더할나위 없는 외로움과 동의어이기도 하다는 것을.



하루의 일상을 시시콜콜 공유하고 끊임없이 생각에 대해 대화를 나눌 수 있는 대상. 우리의 삶은 결국 이런 상대를 찾아 헤매는 모험같은게 아닐런지. 여러 생각이 스치는 밤이다. 그러나  영화 속 에이미 아담스의 대사처럼 단 하나의 생각만을 붙들어 매어보기로 한다. "결론은 그러니까... 우리는 여기 잠깐 있는거야. 그냥 잠깐... 그리고 여기 이 세상에 있는 동안은... 나는 내 스스로가... 행복했으면 좋겠어." 우리는 이야기를 만들며 산다. 그리고 그 이야기를 누군가와 나누려고 산다. 사랑이라는것은 어쩌면 너와 나 사이, 그 '이야기' 속에 머무는 것인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