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아한 거짓말 - 김려령 지음/창비(창작과비평사) |
어렸을때는 왜 이렇게 바보같은 짓을 저지르고 다니는 걸까. 20 대가 되어서 10대들을 보노라면, 나의 어리석과 부끄러운 과거를 보는듯해 얼굴이 붉어지곤 한다. 나도 쟤들처럼 남들 시선 아랑곳없이 기분대로 행동하고 그랬지, 저렇게 매너없고 무식하고 보이는게 없었지. 어린시절 추억에 미소짓고 행복해질때도 물론 많지만, 그래도 다시 돌아가라면 고개를 절레절레 젓게 되는건 바로 그 때문이다.
<완득이>로 제대로 홈런을 날린 작가 김려령이 후속작품 <우아한 거짓말>로 돌아왔다. 그때만큼 재미있고, 그때보다 깊어진 이야기를 지니고. 소설 <우아한 거짓말>은 죽어버린 소녀 '천지', 그리고 그녀의 단짝이었다는 '화연', 소녀와는 다르게 씩씩한 언니 '만지'를 중심으로 '천지'를 죽음으로 몰고 간 상황들과, 그녀의 죽음으로 인해 감정의 변화를 겪는 10대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책을 읽으면서 내내 나의 10대 시절이 많이 떠올랐다. 누군가에게 괴롭힘을 당하고, 누군가를 상처줬던 나날들. 지나고 나서야 그게 상처라는것과 치기어린 잘못이라는것을 깨닫게 되었던 시간들. '교우관계가 좋습니다' 로 학교 생활 기록부를 점철했던 밝고건강한 내 10대 내면에 자리잡고 있던 어둡고 미묘했던 그 감정들.
주인공 천지는 똑똑하지만 소심한 아이였다. 그리고, 그녀는 지 멋대로이고 교활한 친구 화연의 희생양이 된다. 화연은 천지를 곁에 두면서도 안 그런척 스리슬쩍 조롱하고 무시한다. 그런 화연의 본심을 알고 있는 다른 친구들은 오히려 당하고만 있는 천지를 답답해하고, 천지와는 달리 친구도 많고 씩씩한 언니 만지역시 그런 천지의 내면을 들여다보지 못하고 힘이 되어주지도 못한다. 그리고, 천지가 죽는다. 이제 화연과 만지는 그녀의 죽음앞에서 얽혀버린 실타래를 풀어가기 시작한다.
친구라는 이름으로,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거짓 안부와 관계를 포장하는 모든 위선을 이 소설은 얘기하고 있다. 친구라고? 언니라고? 엄마라고? 나에 대해서 뭘 아는데? 내가 괴로울 때 어디에 있었는데? 소설을 다 읽고 작가의 말을 읽으며 울컥 눈물이 솟았다. "잘 지내니?" 라던 이모의 말이, 너밖에 없다는, 사랑한다는, 모두 너를 위해서라는 우아한 말이 아닌, 진심이 담긴 저 평범한 안부인사가 작가를 지켜주었단다. 어떤 순간에, 사랑하는 누군가에게 진심으로 건넬 수 있는 말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다 알고 지내고 있다고 생각하는 모든 관계들에 문득 숨이 턱하고 막혀온다. 나의 말이, 나의 손길이, 나의 시선이 진심이었을까 싶어 되돌아보게 되고, 나의 시선이, 나의 손길이, 나의 말이 진심을 어떻게 표현해왔는지 되돌아보게 된다. 우아하다는 이유로 내뱉었던 자연스러운 거짓말들.... 마주하기 힘든 진심을 외면하는 댓가로 쉽고 간편한 겉치레를 해왔던것은 아니었을까.
문득, 우리는 말할 수 없는것에 대해서는 침묵해야한다 라던 비트겐슈타인의 말이 떠오른다. 그 때 나는 무슨말을 했어야 하는걸까, 그리고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무엇일까. 우아한 거짓말과 투박한 진심 사이... 그곳에 서서 서성이며 조용히 안부를 묻는다. 그때의 너... 잘 지내고 있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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