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 꼬맹이들을 모아놓고 영어를 가르치기 시작했다. 요즘같은 시대에는, 초등학생일수록 영어를 잘 한다지만 이 녀석들은 낫놓고 기억자도 몰랐다. 아니, 영어니까 에펠탑열쇠고리를 쥐어져도 A자도 모른다라고 말해야 맞으려나. 쨌든 그만큼 영어의 영자도 모르는 녀석들이었다.
기초 지식이 없는건 둘째치고, 초등학생이라그런지 집중력도 빵점이었다. 하나 가르쳐주면 말도 안되는 소리를 지들끼리 지껄이며 깔깔거리고, 무서운 표정을 짓고 '까불래' 하고 으르렁거려도 소용없었다. 아씨, 내가 왜 이러고 있어야만 해, 누가 알아주는것도 아닌데! 이 꼬맹이들을 가르친다는게 과연 가능한 일일까싶었다.
그래도 나랑 만나고 싶어서 어제부터 전화를 해댔던 녀석들을 매몰차게 뿌리칠수는 없었다. 내가 여기서 포기하면, 영어의 영자도 모르고 살아갈 저 꼬맹이들의 미래가 빤히 보여서 억지로라도 알파벳이라도 떠먹일 심산이었다.
I am을 가지고 자기소개를 하는 문장 5개를 익히게 하고, 외우게 하고.. 그렇게 고군분투하기를 40여분.. '학생이 영어로 뭐지?' 라고 물었더니 '학교는 영어로 아는데' 했던 아이들과의 첫 수업은 가까스로 마무리 될 수 있었다.
수업을 마치고는 꼬맹이들하고 짜파게티를 끓여먹었다. 마음이야 더 좋은걸 주고 싶었지만, 주머니엔 삼천원이 다였다. 배고팠던 나도 나였지만, 애들도 애들은 애들인지라 허접한 요리에도 신나게 그리고 맛있게 먹어주었다. 그렇게 식사까지 함께 하고 나니 이제는 정말로 헤어져야 할 시간.
애들은 집에 돌아가며 '내일도 봐요' 라고 말해서 나를 경악하게 만들어주었고, 돌아가면서도 그놈의 시끄러운 입과 부산스러운 손을 가만두지 않았다. 아오, 저 악동들! 뭔가 녹초가 되어 눈을 흘기고 있는데, 뜻밖에도 오늘 수업시간에 제일 말썽을 피우던 꼬마 하나가 '선생님 영어 가르쳐주셔서 감사합니다' 하고 인사를 하는게 아닌가.
와, 순간 눈물이 핑 돌았다. 누구한테 저렇게 진심어린 인사를 받아본게 언제던가. 말로는 '인사만 잘하지말고 말 좀 들어!' 라고 쏘아주었지만, 꼬맹이의 '감사합니다' 라는 인사를 내 가슴을 쉬이 떠나지 않았다. 듣는둥 마는둥, 장난치고 낄낄댔지만 그 아이에겐 자기를 위해 누군가가 뭔가를 가르쳐 주려고 애쓰는 모습이 고마웠던 모양이다. 선생님 고맙습니다... 아이의 순수함이 내 마음을 울리고 또 울렸다.
대학교 1학년때부터 지금까지 과외나 학원강사일을 하면서 수많은 아이들을 가르쳐봤지만, 그 누구도 내게 '가르쳐주셔서 고맙습니다' 라고 머리 숙여 인사한 아이들은 없었다. 그들과 나의 관계는 '당연히' 가르쳐주고 '당연히' 그에 합당한 페이를 받는 관계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댓가없는 가르침을 실천하자 뜻밖에도 아이들은 내게 '감사합니다' 라는 마음의 답례를 해 준 것이다.
이 글을 쓰는 도중에 꼬맹이 중 한명한테서 전화가 왔다. 전화를 받자 '쌤 나는 11살이에요가 영어로 뭐였죠?' 하며 묻는다. 아, 이 이토록 사랑스러운 꼬마의 열정이라니! 나는 수화기에 대고 '아임일레븐이얼즈올드' 라고 또박또박 대답해 주었다. 아이들을 가르치기로 한것이 잘 했다는 생각이 든다. 이 아이들과 앞으로 만들어 갈 영어시간이 무척이나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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