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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앞의 생

가난한 심사

by 김핸디 2010. 10. 4.


고등학교 동창 결혼식에 10만원을 썼다. 축하해주고 싶은 마음은 컸지만, 것 보다 허한 주머니가먼저 신경쓰여 즐겁지만은 않은 시간이었다. 결혼식이 끝나고 친구들끼리 카페에 들려 못다한 이야기를 나눴다. 더치페이로 내야할 돈은 팔천 얼마였고, 나는 지갑을 털털 털어 8천원만 내며 '이것밖에 없어' 라며 멋적은 미소를 지어보였다. 다행히도 옆의 친구가 9천원을 내서 나의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었다. 이것밖에 없어, 라고 말한적은 많았지만 그동안의 '이것밖에 없어' 가 '현재 지갑에 이것밖에 없어' 에서 '현재 지갑에' 가 생략된 말이었다면, 그날의 '이것밖에 없어' 는 정말로 '내게 남은 돈 전부' 를 말하는 것이었기에 마음 한켠이 헛헛해졌다. 텅텅 비어버린 지갑을 보며 '이게 나의 현실인가' 싶어 울적해졌다.

몇달전부터 '부모님의 돈에 의지하지 않겠다' 라고 마음속으로 선언한 이후, 내가 유용할 수 있는 자금의 범위란 사촌동생을 가르치고 용돈 조로 받는 몇푼의 과외비가 다라는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 안에서 학자금 대출의 이자를 내고, 학교에서 생활하는 식비 및 교재비를 해결하고, 친구들을 만나 영화라도 볼라치니, 내가 가지고 있는 돈에서 마음놓고 티 쪼가리 하나라도 살 수 없어 형편은 쪼들리기만 했다.

'진작에 부모님으로부터 경제적으로 독립했어야 한다' 라는 생각과 '졸업하기 전까지는 부모님의 도움을 받아도 괜찮은것 아닌가' 라는 생각이 하루에도 몇번을 오갔지만, 한 번 엄마에게 '만원만' 하던게 부끄러워지자 섣불리 손을 내밀 수가 없었다. 가난한 대학생, 은 '학생이니까' 싶어 부끄럽지는 않았지만 기존에 누려왔던것들을 포기해야만 했기에 어쩔 수 없이 불편함은 감수해야만 하는 성질의 것이었다.


책을 읽다가, 카피라이터 정철이 가난에 대해 이렇게 적어놓은것을 봤다.

가난은 사고 싶은 책을 못사는거지. 그래서 도서관을 찾은 거지. 빌려 읽는 거지. 빌려 읽어야 하니 조금 불편한 거지. 밑줄을 그을 수 없으니 조금 속상한 거지. 반납기간이 지나면 돌려보내야하니 조금 섭섭한 거지. 다시 펼쳐고 싶을 때 내 곁에 없으니 조금 답답한 거지. 어쨌든 책을 읽을 수 없는 건 아닌 거지. 불편하고 속상하고 섭섭하고 답답하지만 창피한 건 아닌거지. 도서관 스티커 붙은 책을 들고 다니는 것처럼 창피할 이유가 없는 저기. 정말 사고 싶은 책이 있다면 사면 되는 거지. 가난이 지나가면 그때 사면 되는 거지.

가난이 지나가면 그때 사면 되는 거지. 심사가 심사인지라 마지막의 '거지' 라는 종결어미가 나를 가르키는것같아 조금은 위축되었지만, 내가 주목한것은 '가난이 지나가면' 이라는 문두였다. 그래, 내가 지금은 비록 학생이지만 그래서 가진돈도 없고, 더치페이 할때도 조금은 위축되는 젊음이지만, 언젠가는 이 가난도 지나가겠지. 나이들수록 하나씩 늘어나는 삶의 무게가 조금은 힘겹다. 가난한 심사가 비틀리기전에, 하나씩 꼭꼭 눌러펴며 스스로를 위로할 도리밖에는 없다.

이것도 다 지나가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