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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네마 천국

자기 삶을 잃어버렸던 그녀가 마침내 자기 삶을 찾기까지, 영화 <엘르>

by 김핸디 2019. 2. 17.



#미셸, 살인자의 딸


영화 속 미셸(이자벨 위페르)는 성공한 여성이다. 게임회사의 대표이며, 장성한 아들이 있고, 절친한 친구와, 그를 욕망하는 남자, 그리고 그가 욕망하는 남자까지... 사회적 지위와 관계속에서 그녀는 얼핏 완벽해보인다. 그러나 그녀는 아직도 살인자인 아버지의 그늘속에서 살아간다. 카페에 앉았다가도 "너와 너의 아버지는 쓰레기야" 라는 모욕을 받아야하는 삶. 그녀는 그렇다. 살인자의 딸인 것이다.



#모든것을 가졌지만, 아무것도 가지지 못한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성공한(듯한) 삶을 산다. 부모, 자식, 남편, 친구, 동료, 남자친구, 며느리, 손자까지... 그녀는 인간이 가질 수있는 모든 관계를 가지고 있는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아버지는 살인자이고, 남편은 다른 여자를 만나고, 아들과 며느리는 자신에게 모욕을 주고, 남자친구는 그녀를 성적으로 착취한다. 하다못해 손자는... 알고보면 그녀의 손자가 아니다. 모든 것을 가졌지만 아무것도 가지지 못한 삶, 미셸의 삶은 공허하고 또 쓸쓸하다.



#아버지의 타나토스, 어머니의 에로스


모든 극단은 통한다. 성과 속, 욕망과 절제, 아름다움과 추함. 미셸의 아버지는 독실한 신앙을 가졌다. 어머니는 그와 반대로 세속의 쾌락을 탐한다. 그러나 그 독실한 아버지가 바로 사람을 죽인 살인자다. 어머니는 그런 아버지를 오히려 인간적으로 품고자 노력한다. 미셸은? 10살때부터 언론과 경찰을 통해 찢겨진 존엄. 그 삶속에 늘 자신의 핏속에 흐르는 아버지의 정체성을 부인해야만 했을 것이다. 나는 살인자의 딸이야. 내게는 살인자의 피가 흐르고 있어. 내 안의 분노, 파멸, 질투... 그 모든 자연스러운 감정앞에서 그녀는 스스로를 억누르며 살아온것처럼 보인다. 항상성을 유지하는 것. 내 안의 권한을 통해 내 삶을 늘 '기본 세팅' 으로 유지하는 것. 그것이 그녀가 살아온 방식이었을 것이다. 



#감정이 없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렇지만 그녀는 자신 안의 아버지의 괴물성을 이겨내는데 성공한다. 타나토스를 억누르는데 성공해서가 아니라, 에로스의 발현을 통해서. 에로스의 발현은 곧 인간성의 실현이다. 삶을 잃어 버렸던 여자, 누군가의 그늘에서 평생을 살아왔던 여자는 거짓말을 그만두고, 진실을 이야기함으로서 새로운 인간성을 획득한다. 다시 새로운 삶이 시작되는 것이다. 성공한 기업가, 살인자의 딸, 누구의 아내, 누구의 엄마, 누구의 여자가 아닌... 자기 자신(ELLE) 으로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