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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네마 천국

그럼에도, 사랑이라면 <콜미바이유어네임>

by 김핸디 2018. 7. 1.




콜미바이유어네임. 일명 콜바넴이라 부르며 수많은 마니아층을 형성한 영화. 

일단 주인공들의 비주얼이 좋고, 이탈리아의 풍광이 아름답다.

그리고 무수한 해석이 가능하다. 어떤 해석? 

글쎄. 영화라는 것은 언제나 씹고, 뜯어서, 맛보기 나름 아니겠는가.

정답이란 어차피 없고, 관객이 누릴 수 있는 가장 큰 기쁨은 

감독도 모를 의도를 추측하며 그랬을 것이라고 영화를 더욱 풍성하게 것이니까. 


#. 드러내지 말라 하는 것, 그렇지만 드러낼 수 밖에 없는 것


영화 속 두 주인공은 유태인이다. 

엘리오는 올리브의 목걸이를 보고 "나도 이런게 있었는데, 엄마가 유태인임을 드러내지 말래서 안했다"

고 말한다. 그러나 나중에는 올리브와 같은 목걸이를 하고 나온다.

그들의 유태인으로의 정체성, 목걸이로 표시되는 정체성은 그들의 사랑과도 같다.

드러내지 말라고 하는 것. 그것은 사회에서 허용되지 않거나, 긍정적인 시선을 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드러내지 않는다고 해서, 없었던 일이 된다거나 있었던일을 없는것처럼 할 수는 없다.

영화 속에 나오는 고대 유물(동상 같은?)도 마찬가지다.

바닷속에 잠자코 가라앉아 있지만, 결국엔 누군가에 의해서 드러나고 만다.

드러내라 말하지 않는 것, 그렇지만 드러낼 수 밖에 없는 것.

영화는 그들의 사랑과 정체성을 곳곳의 은유로 나타내고 있다.



#. 사랑의 편재성, 그리고 유일성


이 영화에서 올리브와 엘리오의 사랑은 놀랍게도(?) 쉬이 받아들여진다.

영화에서는 게이커플이 등장하고, 엘리오의 부모는 그들과 자연스럽게 교류한다.

엄마는 무척이나 자연스럽게 엘리오의 감정을 알아차리고,

모든것을 알게 된 후에 아빠 역시 엘리오에게 훈계나 충고보다는 격려를 건넨다.

이것은 기존의 퀴어영화에서는 쉽게 보지 못하는 풍경이다.

잘못됐다는게 아니라, 대부분의 영화에선 동성이라는 점이 사랑의 허들로서 작용해왔다.

그러나 이 영화에선 적어도 동성이라는 것이 문제되지 않는다.

언제, 어디서나, 누구에게나 나타날 수 있는 사랑의 한 방식.

영화는 사회적 인식을 걷어냄으로써 올리브와 엘리오의 사랑을 편재하는 보통의 것으로 만들어 그린다.

물론 그들의 사랑은 평범하지 않다.

둘의 사랑이 동성애라서가 아니라 그들의 사랑의 방식,

제목과도 부합하는 '콜미바이유어네임' 이라는 사랑의 언어속에서 

그들의 사랑은 대체불가능성의 유일무이한것이 된다.



#. 당신의 이름, 그리고 또 나의 이름


왜 둘은 이름을 바꿔 부르는 것일까. 

사실, 사랑은 늘 하나되기를 열망한다.

영화 <헤드윅>에서 원래 인간은 하나였고 둘로 갈라져버린 이후

평생 반쪽을 찾아 헤매는 것이 사랑이다라고 말한 것도 그 이유 때문일것이다.

나는 너다.

하지만 이 문장으로는 사랑이 성립되지 않는다.

우리가 하나라면 결국 나는 내 자신을 사랑하는 것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사랑은 둘의 감정이고, 둘의 것이 되어야 한다.

그렇지만 너를 만나기 전의 나와, 너를 만난 이후의 나는 온전히 다른 사람이다.

나는 나고 나로 살아왔고 앞으로도 나로 살아갈 것이지만

너를 만나고, 너와 사랑하는 순간의 나는 이전의 나와는 다른 사람이다.

네가 불러주는 나의 이름은, 그래서 둘이면서도 하나이고 하나이면서 둘이 될 수 있는 우리들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