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에게는 거울같이 반사할 수 있는 인물이 필요하다고 한다. 전문용어로는 '자기반사대상' 이라고 한다는데, 유유상종이라는 고사성어를 생각해보면 이러한 인물의 중요성을 인식할 수 있을것이다. 나에게도 몇몇의 그런 '나를 비추고싶을만큼의 대상' 들이 있다. 가진것 없는 내 인생에 이들이 존재한다는것은 얼마나 빛이 나는 일인지. 어떤분의 블로그에 들어가 관련글을 읽다가 나도 한번 그 사람들을 꼽아보기로 했다.
# 한 없는 긍정, 교회오빠 K
그를 알아온것은 내가 초등학교 때 부터였다. 그는 그때 고등학생이었고, 덩치있는 외모임에도 딱 달라붙는 옷을 즐겨입어 어린 내눈에 경악을 가져온 존재였다. 하지만 자랄수록 외모를 넘어서는곳에서 그의 진가가 발휘되는걸 느낄 수 있었다. 그는, 정말이지, 사람들이 '진국' 이라고 불릴만한 그런 성품을 지니고 있었다.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셔서 홀어머니 밑에서 자랐지만, 구김살이라고는 눈꼽만큼도 찾아볼 수 없었다. 세상에, 여태껏 그리 오래봐왔지만 한번도 신경질을 내는걸 본적이 없었다. 한없이 성실했고, 늘 웃는 얼굴이었으며, 꾸중을 들을땐 '네 잘못했습니다' 라고 어떠한 변명도 하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어른들은 늘 그를 칭찬했으며, 주변에 친구들도 엄청났다. 나는 나이가 들수록 그의 한없는 긍정과 변치않는 성실함에 존경을 금치 못하게 되었다. 작년에는 그의 진가를 알아 본 한 여자가 그를 쫓아다닌끝에 결혼을 했고, 고등학생으로 처음만났던 그는 이제 한 아이의 아빠가 되었다. 나는 그가 늘 그래왔듯, 최고의 아들과 최고의 친구를 넘어 이번에도 최고의 아빠가 될것이라고 믿는다.
# 눈물을 부끄럽게 만드는 여유, 선생님 C
그녀는 내가 2년여간 참여했던 독서토론회의 담당 선생님이었다. 늘 웃는 얼굴이었고, 글쓰는 분이신지라 언제나 입에서 주옥같은 말들을 쏟아내셨다. 누구보다도 유쾌하고 누구보다도 신나게 인생을 사시는 분. 그분의 남편은 오랫동안 지병을 겪으셨는데, 그것마저도 숨기기보다는 자신의 인생의 한 부분으로 기꺼이 받아들이는 분이었다. 남들처럼 가족의 생계를 위해 40여년을 사시다가, 도저히 문학에 대한 끓는 애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뒤늦게 시작한 학문의 길. 남편의 병수발을 하면서도 박사학위까지 마치신 그분의 삶은 한 편의 드라마와도 같았다. 어느날인가, 그분의 남편의 병세가 악화되어 독서회멤버들과 병문안을 간적이 있었다. 야윈 그분의 남편에 모습에 눈물이 왈칵 나려는데, 그 옆에서 웃으며 우리를 마주하는 C선생님을 보면서 차마 눈물마저도 부끄러워 흘릴 수가 없었다. 내가 뭐라고 저분의 삶을 안타까워할 수 있을까... 나하고는 비교도 안되게 저렇게 빛나는 얼굴로 서 있는 분인데, 라는 생각에서였다. 그 후, 그분이 하는 소설얘기 인생얘기는 더욱 더 내 마음을 후벼파며 다가왔다. 겨울이오면 눈오는 남한산성길을 드라이브하고 한다던 그 분, 그래서인지 겨울이 오면 그 분이 더욱 생각나곤 한다.
# 주는 사람은 후회없다는 걸 알려준, 봉사자 H
그는 수능을 마치고 내가 들어간 봉사모임에서 만난 사람이었다. 우리조의 조장이었기에, 조장님 혹은 그가 부르라는대로 싸부라고 불렀고, 19살의 철딱서니 없는 나를 귀엽게 받아준탓에 우리는 꽤 친해질 수 있었다. 봉사는 크리스마스 시즌을 맞이하여 두번정도 진행되었고, 그 봉사를 준비하며 2달여간 매주 만났다. 처음하는 자발적 봉사는 즐거웠고, 그래서인지 우리조는 봉사를 끝난뒤에도 종종 만남을 가지곤 했다. 늘 웃는 얼굴이었고, 썰렁한 농담으로 우리의 핀잔을 들으면서도 개의치 않는 사람이기도 했다. 특히 나하고는 죽이맞아, 연극이나 영화도 같이 보러다니고 카메라들고 놀러다니기도 하는둥 봉사조내에서도 특별한 친분을 유지했다. 만나면 언제나 배려가 깊었고, 정말 지독히 착했고, 그래서인지 내게도 참 잘해줬다. 그러나 당시에 나는 그냥 참 어렸고 철딱서니가 없었다. 그래서 지 멋대로 굴었다. 나는 대학에 들어가 바쁘다는 이유로 그와의 연락을 끊었고, 1년이 지나서야 그가 얼마나 좋은 사람이었는가를 깨달았다. 다시 연락을 취했을땐 이미 서먹해진 후였고, 오랜기간 못만나다가 작년이어선가 그가 결혼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 사람이 내게 줬던 책과 음반들은 아직도 내 방에 남아있는데, 나는 이제 그를 다시 볼 수도 연락을 할 수도 없다. 버릴수도 없고 간직하자니 그 사람을 자꾸 생각나게 하는 물건들. 나는 그것들을 볼 때마다 '그 사람을 내가 좋아했었나' 싶어 괴롭고, 먼저 연락을 끊은게 후회되고 그렇다. 그래도 그 사람때문에 배운게 참 많다. 사람을 만나고 헤어질땐, 내가 끝까지 최선을 다하고 내가 해줄만큼 다 해주면 후회따윈 남지않겠구나, 하는 깨달음...받는것만 좋아했던 나를 비춰볼 수 있게 해준 고마운 사람이었다.
'자기앞의 생' 카테고리의 다른 글
팀 과제 열전 (6) | 2010.12.07 |
---|---|
잡힐듯 잡히지 않는.. 칼 폴라니 (2) | 2010.11.27 |
감사의 조건 (4) | 2010.11.21 |
야밤의 센티멘털 (5) | 2010.11.18 |
홍콩이 그리워질줄이야... (4) | 2010.11.1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