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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앞의 생

팀 과제 열전

by 김핸디 2010. 12. 7.



전 팀플이 싫어요, 사람 만나는걸 싫어하는건 아닌데 사람을 못 믿겠어요.

오늘 교양수업시간에 나의 직속후배가 내게 털어놓은 말이다. 어쩌다 팀플 성토의 장이 이뤄졌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도 적어도 팀플에서는 '사람을 못믿겠다' 라는 말을 신뢰하는 편이기에 그의 말에 맞장구를 쳐주며 동조의 뜻을 내비쳤다.

과 특성상 새내기부터 팀플에 시달리기 시작해서, 대학 3학년부터는 정말 팀플에 묻혀살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번 학기엔 팀플이 서너개. 평균적으로 적은 수라 쾌재를 불렀지만, 조금 한다고해서 속이 터지고, 답답함이 돋는걸 피해갈 수 있는건 아니었다. 물론 단순 나열 조사식 팀플, 혹은 정확히 역할 분담하고 역할에 맞게 평가받는 팀플은 나도 대 환영이다. 하지만, 프리젠테이션이란 대개 뭉뚱그려 평가해버리기 마련이고, 그 안에서 나의 노력들과 공들은 희석되기 마련이며, 발표 '논리' 가 들어가게 마련이고 서론 본론 결론에 이르는 논리를 토의하는 과정에서 대략 격론이 벌어지기 마련이다.

게다가 이렇게 어렵게 얻은 논리가 한번에 생각대로 실행물로 나오기는 거의 제로 퍼센트에 가깝다. 내 분량을 올렸더니 '이거 좀 안 맞는거 같은데' 라며 태클을 걸어오는것은 부지기수고, 그럼 어떻게 할까요? 라고 내 의견따위 무시하고 한수 접고 들어가면 '그건 잘 모르겠고요, 좀 안맞는것 같아요' 라고 환장할 멘트 날려주는 고문관들도 여럿이다. 

내가 아니래도 남들이 하겠지, 라는 마인드로 몇몇 조원들은 회의에 빠지고, 정작 회의에 빠진것들이 '이건 이렇게 해야되지 않나요?' 라면서 더 나은 퀄리티를 위해 전전긍긍하는 아이러니.(그렇게 걱정되면 회의에는 왜 빠졌니?) 잘 되면 내탓 못되면 네탓 거리는 무책임의식. 연대라고는 조금도 찾아볼 수 없는 무한 이기의 장.

팀플 3년이면 성악설을 굳게 믿고, 공산주의에 학을 떼게 된다. 인간이 선하다고? 미쳤구나. 똑같이 일해서 똑같이 나누자고? 미쳤어, 정말. 그래서 고학년쯤 되면 차라리 혼자 하는게 편할지경에 이르고, 둘이하나 셋이하나 다섯이하나 혼자하는것과 별반 다름없는 퀄리티가 나오는것에 전율하며 세계 7대 불가사의에 '팀플 성과 불변의 법칙' 이라는 제 8대 불가사의를 어김없이 추가하고야 만다.

협동심이 없다고 생각하지도 않고, 사람과의 의사소통도 익숙하다고 자부하지만, 어쩐지 팀플은 남의 도움으로 이루어지는 시간과 나와 그의 의사를 일치하는 시간이 정확하게 상쇄하여 별로 성과에 도움을 주지 않는다는것이 나의 소견이다. 지금? 지금도 당연히 조원들과 격렬하게 맞짱 토론을 하고 오는 중이다. 그렇지 않았다면 내가 이렇게 주저리 팀플에 관한 경멸을 늘어놓지는 않았겠지.

기말고사 기간, 아직도 2개의 팀플이 남아있다. 겨우 기존의 사회문제 중 하나를 골라서 원인분석하고 대안 제시하는 뻔하디 뻔한 팀플과제에 왜 이렇게 진을 빼야하는거란 말인지. 아, 빨리 이 모든것이 지나갔으면 좋겠다. 매학기 시험기간마다 팀플때문에 이 무슨 개고생이냐. 내일도 쉬기는 글렀다. 억울한김에, 오늘은 일찍 잠이나 자야겠다. 에라이, 닝기리, 학점따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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