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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 피델리티

2010, 올해의 문장 best 5

by 김핸디 2010. 12. 30.



한 해가 이렇게 또 지나간다. 나는 늘 그렇듯 이번에도 100권 남짓한 책을 읽었고(뿌듯뿌듯) 그 책들속에서 무수한 문장을 만났다. 문장이란 대개, 그것을 떼놓고 보기보다는 늘 맥락속에서 읽혔을때 더욱 와닿는 법이지만, 그래도 연말이니까.. 단편적이더래도 그 문장들을 나열해놓고 정리해보려 한다.

5. 근본적은 지적 惡은 '무지' 가 아니라 '무시' 다 - 자크 랑시에르,『무지한 스승』 中 

- 그동안의 나는 약간의 지적 허영에 물들어있었던것 같다. 많은 지식들과 어려운 용어를 습득해서 사용하는게 폼나보였고, 그렇게 함으로써 내 자신이 조금 괜찮은 인간인것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올해들어서는 어쩐지 그러한 손에 잡히지 않는 지식을 읊는 축보다는, 하루하루 땀 흘려서 스스로의 밥벌이를 하는 인간의 육체적노동이 훨씬 더 숭고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어떻게 그런것도 모를 수 있어? 라는 태도에서 그거 모르면 어때, 잘 살면 되지 하는 태도를 가지게 되었달까. 그리고 그런 시기와 맞물려 읽은 책 속 이 구절은 내 머리속을 잠시 얼얼하게 해 주었다. 지적악은 무지가 아니라 무시다. 누가 더 지적으로 악하고 불필요한 존재인 것일까. 무지할지라도 무시하지는 말자. 책의 밑줄을 북북 그으며, 스스로에게 강한 어조로 일러두었던 말이다.

4. 인간을 공평하게 대하는 사람에게는 기가죽는 법이다 - 이사카 고타로, 『중력 피에로』 中

- 시크릿가든에서 길라임이 김주원에게 해준 충고이기도 하지만, 정말로 진정한 카리스마는 '존경이 바탕이 된 두려움' 에서 나온다. 존경이 없으면 아무리 벌벌 떨며 기어도, 그걸 진정한 힘이라고는 할 수 없다. 그리고 권력자에 대한 존경중에서 가장 나오기 힘든성질의 것이면서도, 나오기만 한다면 정말 강력한 힘을 발휘하게 되는것이 바로 이 '공평함' 에 대한 것이다. 내가 후보시절의 노무현 대통령을 그렇게도 좋아했던 이유는, 유권자가 아니었던 당시의 나에게 가던길도 돌아와 악수를 청해주던 그 공평무사한 태도 때문이었다. 그는 돈이 많다고 해서 누군가에게 굽신거리지 않았고, 평범한 민초들에게 기꺼이 고개를 숙일 줄 알았다. 나는 그래서 노무현 대통령을 좋아하는것을 넘어서 존경했고, 어떠한 권력자보다 그의 앞에서 존경으로 마음으로 대할 수 밖에는 없었다. 이 문장을 읽으면서 노무현 대통령을 떠올렸던것은, 그 때문이다.

3. 사람은 자기가 선택한것의 누적분이다 - 김어준, 『건투를 빈다』 中

- 지금의 나는 내가 선택해 온 모든것들의 누적분이라는 사실. 이 평범하지만 심오한 진리를 김어준이 알려주었다. 그래서, 인생에서 중요한건, 선택에 대한 후회따위가 아니라 어떠한 선택을 하던간에 그 선택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것. 자신이 결정한 일에 대한 기회비용을 치뤄야한다는것이라는 단순 명쾌한 진리를 그가 전해주었다. 공부가 싫다? 그러면 하지말고 대신 처참한 성적을 감당해낼 수 있으면 된다. 하지만 그걸 감당해낼 수 없으면 열심히 공부하는걸 선택해야하는것이다. 스스로의 선택에 따른 정당한 결과 감내, 간단하면서도 가슴에 와닿지 않는가. '인생이란 의외로 심플한 것, 마음으로 이기고 마음으로 지어라' 라던 강대구의 명작 <풍운도사의 108번뇌>는 옳았다.

2. 너도 주변에서 참 이해받지 못하는 캐릭터겠구나? / 영웅이 다 그렇죠, 뭐 - 메리대구공방전 中 강대구와 비단이의 대사

- 올해 들어서 나는 고독을 즐길 줄 알게됐다. 고독과 외로움의 차이는 후자는 견뎌야 하는것인 반면에 전자는 즐길 수 있는것이라 한다고 어느 책에서 읽은 기억이 난다. 늘 마음이 맞는 친구와도 때론 의견 차이가 있고, 평생을 같이 살아온 가족과도 때로는 불편할때가 있다. 타인의 시선에 얽매이면 그때부터 내 행동들은 제약을 받고, 내 인생이 아닌 남의 인생을 살게 되기도 한다. 하지만, 인간은 누구나 혼자다. 그래서, 인생은 '네가 있어야 행복해' 가 아니라 '혼자여도 좋지만 네가 있으니 더 좋다' 라는 마인드로 살아가야한다. 그리고 그 함께 있으면 좋은 누군가가 아무도 없을때는 '영웅은 원래 고독하고 이해받지 못하는 법' 이라며 스스로를 다독일줄도 알아야한다. 멋지지 않은가, 내가 이해받지 못하는건 내가 그만큼 뛰어난 존재이기 때문이라니!

1. 인생의 즐거운면만을 보려는것은 불성실한 태도다 - 곰브리치, 『서양미술사』 中

- 미술사 책을 읽으면서 이런 인생통찰적 메시지를 발견하게 될 줄은 누가 알았겠는가. 뭉크를 설명하던 문장이었었나, 여튼 아름답게만 표현하는 예술을 탈피해서 거칠고 강한 그림을 그리는 화가들을 설명하며 곰브리치는 이와 같은 문장을 썼다. '인생의 즐거운면만을 보려는것은 불성실한 태도다' 라고. 맥락과는 조금 다른 해석이겠지만, 나는 이 말이 참 마음에 와닿고 많은 위로를 받았다. 즐겁게 사려는것이 오히려 지양되야할 불성실할 태도라니, 어쩐지 긍정의 힘 어쩌고 하며 떠들어대는 세상에서 기운처질때가 많은 나에게 힘을 주는 말이었기 때문이다. 인생이 어떻게 매일 즐겁고 행복하냐? 그렇게 사는건 삶의 대한 예의가 아니야. 내가 이렇게 힘들고 괴로운거? 이거 다 내가 인생을 그만큼 성실하게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야. 뭐 이런식의 확장도 가능하면서. 올해는 특히나 무너질것같은 내 자신을 부여잡고 싸워야만 하는 한 해였었다. 그때마다 나는 이 말을 떠올렸고, 그래서 곰브리치의 이 문장을 올해 최고의 문장으로 꼽고 싶다.


올 해도 참 많은 책들이 내게 힘을 주고 어깨를 빌려주었다. 고루하지만 그래서 나는, 책속에 길이 있다 라는 말을 믿는다. 2010년에도 나의 삶을 밝혀준 훈훈한 등불같은 책들,(그리고 드라마들ㅋ) 볼수록 볼수록 문장은 이토록이나 사랑스럽고 마음을 포근하게 적신다. 세계의 글쟁이들이 한 단어 한 단어 엮어준 명품같은 문장들이 있어, 나는 올해도 행복했었다. 내년에는, 물론..더 많은 문장들과 함께 더 행복하겠지. 나의 2011년이 무척이나 기대된다. 나의 삶은 언제나 조금씩 나아지고 있는것을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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