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scene

야, 네가 3등의 고독을 알아?

by 김핸디 2011. 7. 19.


"얘가 왜 이래?"
"숨기려면 표를 내지 말든가."
"내가 뭐?"
"이러기야? 평소에 나는 너한테 고민 다 털어놓잖아."
어머니가 콧방귀를 뀌었다.
"뭐 1등 하다 3등 해서 서럽다는 거? 그렇게 대단한 비밀 털어놔줘서 진짜 고맙다, 야."
한수미가 서운한 듯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야, 네가 3등의 고독을 알아?"
어머니는 예의 비꼬는 말을 할 때 특유의 부드러운 음성으로 답했다.
"수미야."
"응?"
"꺼져."

- 김애란, 두근두근 내인생 中





김애란의 두근두근 내인생을 (연재로 알음알음 읽어오긴 했지만) 각 잡고 읽다가, 이 부분을 읽고는 혼자 웃음이 터져버렸다. 낄낄낄. 3등의 고독이래. 그러다 아침 출근길의 고요한 분위기를 깨닫고는 '아 내가 너무 경망스러웠나' 하고 스스로를 다잡았다. 그렇지만 또 이윽고 나오는 "수미야" "응?" "꺼져" 에 또 한번 미친듯이 웃음이 터지고야 말았다. 응허허항헣허. 옆 자리에 앉은 아저씨의 '아침부터 젊은 처자가 실성을 했나' 라는 눈길을 줘서 잠깐 또 정색했지만, 참을수록 웃음이 튀어나와서 결국엔 책에 얼굴을 묻고 아침부터 끅끅대며 웃어야만 했다. 낄낄낄. 아 생각할수록 웃기네. 아저씨 왜 학교다닐때 이런친구 없었어요? 나는 엄청 심오하게 우주적 고민을 하고 있는데, 시덥지않게 3등을 해서 힘들다느니 하면서 징징대던 친구 말이에요. 아, 그때 나도 이 주인공처럼 이렇게 시크하게 '꺼져' 라고 말해줄걸 그랬어요. 썩소를 지으면서 '힘내' 라고 말하는 대신에요. 그럼 우리 우정이 더욱 깊어졌을텐데.

여튼..이 소설에 이런 대사가 있었다니. 다시금 읽은 <두근두근 내인생>은 처음 읽었을때보다 훨씬 좋다. 이 책을 지난번에 읽고나서의 나의 공식별점은 별 세개에 그쳤었는데, 이 대사를 읽는순간 그때의 별점은 너무 박했으며, 다시 상향 조정을 할 필요가 있다는걸 느꼈다. 야, 네가 3등의 고독을 알아? ...꺼져!







'#scene' 카테고리의 다른 글

그애들의 실패가 부러웠어요  (0) 2011.07.24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사람  (0) 2011.07.19
여기, 그대로 있다  (2) 2011.07.05
기죽지 말고 사십시오  (0) 2011.05.23
백수인거 티나  (6) 2011.04.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