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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네마 천국

생활밀착형 공포, <파라노말 액티비티>

by 김핸디 2010. 9. 21.


  왜 공포영화보다 삼삼오오 모여하는 귀신이야기가 더 무서운걸까? 공포가 극장에서 관람하는 어떠한 '사건' 이 아니라, '현실' 과 깊게 관련된 이야기가 될 때 우리는 더 전율하는 경향이 있다. 아무리, 스크린에 처키, 주온, 사다코가 설쳐도 그건 '만들어진' 이미지라는것을 안다. 그러나, 내가 다녔던 학교에 떠다니는 귀신 얘기, 수학여행을 가서 몇년전에 이 수련원에서 죽은 누군가의 얘기를 듣는 순간 그것은 '나에게도 일어날 수 있는 일' 이 되어버린다. 그때의 공포는, 공포영화를 볼때의 느끼는 감정과는 차원이 다른 섬뜩함이다.

 토요일 아침, 친구와 함께 찾은 극장은 아무리 조조라는것을 감안하더래도 정말이지 아무도 없었다. 늘 사람이 꽉꽉 들어차던 극장에서 영화를 '즐기던' 우리는 그때부터 왠지 오싹한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컴컴하고, 그 넓은 공간에, 단 둘이서 공포영화라니. 겁이 많은 나는 왠지 당장이라도 극장밖을 나가고 싶은 기분이 들 정도였고, 온 몸이 경직되는 긴장감에 친구의 팔을 으스러지듯 잡고 매달리기 시작했다. 이미 이 영화를 보는 순간부터, 나는 이미 '무서운 이야기' 를 듣던 느낌의 생활밀착형 공포를 겪기 시작한 것이다.  

 영화는 생각보다 무심했다. 정말이지 별 사건도 없는 시간들이 지나갔고, 영화라고 했지만 두 남녀의 대화가 이어질 뿐이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카메라에 녹화되는 작은 파라노말한 현상들은 우리를 소스라치게 놀라게 하기에 충분했다. 왜, 그런거 있지 않은가. 자고있는데 뭔가 이상한 그림자가 보이는것 같은 느낌. 그리고 그 작은 현상에도 식은땀이 흐르곤 했던 유난히 길고 무서웠던 어떤 밤.

 100m 앞의 서 있는 귀신보다는 내 옆을 살짝 스치고 지나가는 스산한 바람이 나를 더 공포에 떨게한다. 공포는 시각보다는 청각, 청각보다는 촉각에 의존하게 되는 탓이다. 그런면에서, 이 영리한 영화는 '비주얼' 로 승부하는 다른 공포영화들과의 레드오션에서 벗어나 공포를 지금-여기에서 '느끼게' 하는 전략을 취한다. 마치, 무서운 이야기를 들을 때 현실적인 물리적인 공간에 상상의 나래를 펼쳐 소름이 쫙 돋는것처럼 말이다.

 굳이 무서운 화면을 보여주고, 소름돋는 음악을 틀지 않아도, 영화는 내내 방 한구석에서 현실의 누군가를 지켜보는 기분이 들게 함으로써 공포를 극대화시키는데에 성공했다. 친구에게 들은 '엘리베이터 귀신' 이야기로 인해 한동안 엘리베이터 타기를 기피했던 그 때처럼, 머리감을 때 누군가 지켜본다는 으스스한 얘기에 한동안 머리감을때마다 등골이 오싹해졌던 그 때처럼, 이 영화를 보고 난 후부터 어쩌면 당신은 잠결에 들리는 수상한 기척들에 머리털이 쭈뼛서는 긴장감을 체험하게도 모를일이다.

 '보고 즐기는' 공포가 아닌, '느끼고 오싹해지는' 공포. 파라노말 액티비티, 영화가 끝나는 순간부터 공포는 다시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