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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네마 천국

더러운 세상, 순응하거나 꿈틀하거나 <하녀>

by 김핸디 2010. 9. 21.


   전도연 주연의 화제작 <하녀>를 보았다. 영화는 에로틱 서스펜스라는 말이 무색하게 별 서스펜스 없이 흘러갔지만, 나는 보는 내내 이 영화에 눈을 뗄수가 없었다. 그것은 솔직히 말하자면 간간히 보이는 배우들의 노출씬 때문이기도 했지만, 영화 전체를 관통하는 '무서운 집안' 사람들의 '무서운일' 에 대한 공포감 때문이기도 했다. 

   임상수의 <하녀>는 철저하게 계급을 파고든다. 가장 낮은 계급은 물론 이 영화의 주인공인 젊은 하녀, 전도연이다. 그녀는 어마어마한 대 저택에 하녀라는 신분으로 존재한다. 게다가 그녀와 같은 하녀신분의 윤여정마저 그녀를 무시하고 괄시하려 든다. 같은 계급에도 철저하게 존재하는 서열, 영화는 그 미묘한 권력관계를 놓치지 않는다. 집 주인인 서우나 그녀의 어머니 역시 마찬가지로 계급적인 존재들이다. 그녀들은 좋은 집에 호화스러운 치장을 하고 하녀들을 말 그대로 하녀부리듯 하며 위세당당하지만, 더 많은 돈과 높은 집안일것으로 예상되는 이정재앞에서는 비굴함을 감수하려한다. 없는자와 가진자, 그들 사이에서도 더 없는자와 더 가진자가 나뉘어지는 작은 세상, 그곳이 바로 <하녀> 속 대저택인것이다.

   영화 속 이정재는 친절한 남자다. 그의 딸에게 가르쳤듯이, 친절은 남을 높여주는것 같지만 사실은 자신이 높아지는것이기 때문이다. 그에게 친절은 이토록 스스로의 가치를 공고히하기 위한 수단에 지나지 않는다. 하지만, 전도연이 그 친절을 진심으로 오해하게 되면서 이 대저택의 암묵적인 평화는 어긋나기 시작한다. 그녀는 더욱 친밀해지기를 원하고, 그럴수록 그의 반응은 차갑기만 하다. 그에게 친절은 전적으로 높은 위치의 그가 낮은 위치의 그녀에게 '베푸는 것' 이었지, 동등한 위치에서 서로를 마주하는것이 결코 아니었기 때문이다. 친절을 가장함으로 마음을 유린당한 그녀는 이제 분노하기 시작하지만, 윤여정의 말마따나 계급에 평화를 깨려드는 순간 이 모든것은 이미 예견된 결과였다.

   영화를 보면서 '무서운 집안 사람들'의 행태에 등골이 오싹해져왔다. 꼭대기에 여유롭게 앉은 자들은 언제나 우아한 말투와 고상한 몸짓으로 낮은자에게 미소를 띄며 대한다. 고맙다고, 수고가 많다고, 그렇게 격려하며 기운을 북돋는다. 하지만, 그들의 우아함과 고상함은 전적으로 낮은자들이 계속 그 자리에 있을것을 전제함으로서 보여지는 것들이다. 그들은 그 균형이 깨지려고 할때면, 언제 그랬냐는듯이 포악하고 사나운 얼굴로 윽박지르며 달려든다. 어디서 감히, 너 미쳤어?

   영화의 충격적인 결말은 그래서 조금은 서글펐다. 오랜 세월 억압당하고 착취당했던 윤여정과 전도연은 제 각각 숨죽이던것을 멈추고 그 더러운 작은 세계에 균열을 일으킨다. 드러낼만큼 드러내보이고, 추악함에 진저리치며 바위에다 계란을 친다. 하지만 그것은 어떠한 변화도 일으키지 못한다. 물론, 가장 순수했던 한 영혼이 트라우마를 겪기는 하지만, 정작 괴로워하고 고통스러워야할 인물은 그 작은 소녀가 아닌것이다. 특히 계급의 가장 절정에 있는 이정재가 끝까지 가장 즐거운 모습으로 웃고있는 모습은 그래서 더욱 소름이 끼쳤다. 그는 늘 그래왔던것처럼 가지고 싶은 것을 가지고, 하고싶은 일들을 하며 살아갈 것이다. 그리고 그래왔던것처럼 계속해서 친절할 것이다. 끔찍하지만, 그것이 이 세계의 메커니즘이다. 권력, 폭력, 재력..Whatev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