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인공 줄리엣은 담임선생님 엘렌을 흠모한다. 그녀에게 엘렌은 닮고싶은 동경의 대상임과 동시에 그 자체로 욕망하는 대상이다. 그런 그녀에게 눈엣 가시같은 인물이 있으니, 바로 같은반 남학생 앙투안이다. 엘렌이 모범생인 자신보다 부족한 앙투안에게 더욱 신경을 쓰고, 앙투안과 더욱 친밀하게 지내는것이 줄리엣은 영 못마땅하다. 앙투안에 대한 질투가 커져갈수록 줄리엣은 엘렌에게 분노하기 시작하고, 그 분노는 폭발해 마침내 줄리엣은 앙투안과 엘렌을 부적절한 관계로 몰아가며 파장을 일으키고야 만다.
줄리엣의 엘렌을 향한 감정은 무엇이라 부를 수 있을까. 영화를 보고나서 잠시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에, 사람들은 두가지 반응으로 나뉘어졌다. 첫째는 줄리엣의 감정이 성장기에 겪는 일종의 성장통과 같은것이라는 의견이었고, 둘째로는 줄리엣이 있는 그대로 엘렌을 사랑했다는 의견이었다. 나는 멍하니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서, 황의정승과 같은 심정으로 고개를 끄덕이고만 있었는데 그건 성장통이라고 보이기도 했고 사랑이라고 보이기도 했기 때문이었다. 에, 여튼 이건, 그러니까 굉장히 애매하다고밖에는 말할 수 없는 그런 감정이었다.
나는요~ 선생님이 좋은걸~ 어떡해~
사랑과 우정 혹은 동경과 욕망, 이런식으로 나누기 힘든 감정들은 어디에나 존재한다. 한 예로 나는 누군가를 안 보면 보고싶고, 가만히 있으면 생각나고 해서 '좋아하는군!' 이라고 정의를 내렸다가, 정작 얼굴을 볼때는 하등의 설레임이나 흥분이 느껴지지 않아서 '좋아하는건 아닌가벼' 하고 다시 내 생각을 정정한적이 있었다. 그런가하면 누군가를 볼때는 그렇게 좋고 설레이는데, 정작 뒤돌아서면 생각도 안나고 관심마저도 안생기고 하는 경우가 있기도 해서 혼자 머리를 싸매고 혼란스러워 하기도했다. 이건 대체 뭘까. 좋아하는걸까, 아닌걸까. 그 사람이 좋은걸까, 혼자 날뛰는 내 감정놀음을 즐기고 있는걸까.
게다가, 불명확함은 그곳에만 있는게 아니었다. 사람과 사람과의 관계에서 깃드는 모든 감정들. 이를테면 친구와 나는 며칠전에 만나 누군가와 좋은 관계를 유지하다가 헤어졌을때, '그 사람' 자체가 그리운건지 '그 사람과 함께한 경험들' 이 그리운건지 헷갈린다는 얘기를 나눈적이 있었다. 분명 헤어지고 나서 그 사람이 생각나기는 하는데 그게 '그 사람 자체가 좋기 때문인건지' 아니면 '(그 사람이 아니라도 상관은 없겠지만) 누군가와 함께 있었다는 기분' 이 그리운건지가 불명확하다는 거였다. 내가 좋아하는게 '대상' 인건지, '관계' 인건지, '경험' 인건지, '기분' 인건지. 느낌표 없이 나열되는 의문, 의문, 또 의문.
줄리엣은 앙투안과 엘렌을 모함한댓가로 엘렌에게 미움을 사고, 반 아이들로부터 따돌림을 당하다못해 자살을 시도한다. 그리고 그녀의 자살시도로 인해, 엘렌은 줄리엣이 자신과 앙투안에 대한 모함을 했던것은 '선생님을 좋아했던 한 학생의 치기어린 분노' 였음을 깨닫고 줄리엣을 위로하고 동정하게 된다. 하지만, 줄리엣이 늘어놓은 모함으로 학교생활을 예전처럼 하기 힘들어진 엘렌은 결국 1년간 학교를 떠나있기로 하고 줄리엣에게 마지막 인사를 건넨다. 그리고 그녀의 떠나는 모습을 한 없이 바라보던 줄리엣 역시, 소중하게 간직해왔던 선생님과 관련된 보물상자를 입원해 있던 병원에두고 집으로 떠난다.
사랑이었든, 동경이었든, 지니고 있었던 감정을 모두 소진해버린 자의 마지막 뒷모습. 감독은 정의하기 힘든 '애매한' 감정들을 영리하게 곳곳에 배치해두다가, 깔끔하게도 감정의 찌꺼기를 남기지 않고 정리해버린다. 그래, 중요한건 이것같기도하고 저것 같기도 하는 감정의 정의가 아니라, 무엇이든 그 감정을 그대로 인정하고 표현하고, 그리고 상대로부터의 반응을 받아들이는걸수도 있겠지.
아직도 줄리엣이 엘렌을 동경한건지 사랑한건지 모르겠다. 그리고 내가 느꼈던 감정이 좋아했던건지, 좋아한다고 생각했던건지, 좋아한다고 믿었던건지, 그도저도 아니고 그냥 좋아하는거라고 미루어 짐작한건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애매한 감정들 사이에서도 분명한건 내가 '어떤' 기분을 느끼고 있고, '누군가' 를 향해 그 감정을 발산하고 있다는 사실이 아니었을까. 어설펐지만 스스로에 감정에 솔직했던 줄리엣이 대견스러워진다. 그녀는 상처받았지만, 이제 더 이상 스스로의 정의할 수 없는 감정들때문에 고통받지는 않을것이다. '선생님이 앙투안과 있는게 싫었어요, 그게 무슨 감정인지 딱히 정의 할수는 없었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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