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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앞의 생

육아일기

by 김핸디 2011. 8. 26.


1. 애를 키우고 있다, 는 물론 훼이크고 애를 돌보고있다.
이차저차 이러쿵 저러쿵 슝슝 해서 아는 오빠의 아기가 우리집에 당분간 머물게 되었는데,
가족들이 너무 공사가 다망한 관계로 상대적으로 한가한 내가 상당부분의 육아를 담당하게 된것.

2. 첫날, 그러니까 엊그제는 리모콘만 던져줘도 혼자 신나게 놀았다.
베이비는 기분좋을때 테마파크의 알바생들처럼 손을 요란스럽게 흔들며 인사를 하곤 했는데,
첫날은 뭐가 그렇게 기분이 좋은지 리모콘만 쥐어주었을 뿐인데도 신들린듯한 인사스킬을 뽐내고 있었다.

3. 둘째날, 그러니까 오늘부터는 '칭얼거림이란 이런것이다' 를 몸소 실천해주었다.
안아도 울고 업어도 울길래, 정말 울고싶은 심정으로 아기를 어르고 달래야만 했다.
아이들의 모르핀, 뽀통령님이 얼른 떠올라서 허겁지겁 유튜브에서 '뽀로로와 함께 노래해요' 편을 틀어주었건만,
5분여간 홀린듯 집중해보이더니 이내 '내겐 뽀로로따위 아직 먹히지 않는다!' 라는 자세로 다시 칭얼대기 시작했다.
그만 울어, 이놈의 자식아!
나는 정말이지 아기를 들어 내던지고 싶은 심정이었지만, 이성을 관장하는 전두엽과 강인한 슈퍼에고가 힘을 합쳐 
신문사회면에 실릴만한 나의 상상만행을 제지해 주었다.

4. 아기가 마침내 잠이 들자 너무 기쁜 나머지 나도 함께 잠이 들었는데,
반듯하게 눕혔던 아기는 어느새 침대와 벽 사이 자그마한 틈에 끼어서 나를 경악하게 만들었다.
너... 대체 왜 거기에 들어가 있는거냐!

5. 애를 돌보면서 문득, 피아제의 아동심리학을 공부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지만 나는 3일간 도서관연체크리를 타고 있으니 아마 안되겠지...

6. 베이비를 껴안고있노라면 심장 두근두근 거리는 소리가 느껴진다.
그럴때마다 문득문득 생명의 신비를 느끼면서, 옥시토신이 마구 분비됨과 동시에 모성애가 샘솟는듯한 기분이 든다.
(BGM: 장나라, 나도 여자랍니다)

7. 포대기를 둘러매고 밖에 나갔다가 거울을 보고 깜짝놀랐다.
'헉, 누구지, 이 아줌마는!'

8. 기저귀를 차고 자도 이불을 축축하게하는 경우가 있을수 있다는걸 나는 처음 알았다.
우렁찬 베이비같으니! 가루지기의 3단 방뇨가 부럽지 않구나야!


 
 

* 포스팅하는김에 다시보고가는 가루지기 3 단부스터 


9. 베이비시팅(?)을 한 댓가로 치킨 2마리와 3만원을 하사받았다. 얏호.

그러나 허리가득 파스를 붙이고 울부짖고 있다.
친구는 이런 내게 너는 지금 노동강도에 비해 '무보수 자원봉사를 하고있는것과 다름없다' 며
이해를 돕는 친절한 멘트를 곁들여 주었다.


10. 아기를 돌보면서 당황스러운 것 한가지는 우리집 강아지가 자꾸 아기와 자신을 동격으로 여기려고 한다는것이다.
이유식을 먹는 아기 옆에서 입맛을 다시고, 내가 아기를 안고 있으면 물끄러미 (자기도 안아달라는듯이) 쳐다보곤 한다.
하, 이놈의 개야! 네 정녕 네가 개라는 사실을 잊은'개'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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