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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중에 온 이 사람에게도 - ![]() 존 러스킨 지음, 김석희 옮김/열린책들 |
아, 최고다. 이 책. 저 촌스럽기 그지없는 표지와 경제학을 '도의적' 관점에서 정의하는 '안팔릴것같은 내용' 을 담고 있음에도 불구, 나는 어느샌가 이 책에 완전히 빠져들어가고 있었다. 이 책은 뭐랄까, 딱히 재밌지는 않지만 읽으면 읽을수록 빨려드는 매력을 지니고 있다. 그리고 책을 다 읽고 난 지금, 내 눈가에는 <희망의 인문학>과 <유러피언 드림>을 읽고나서 그랬던것처럼, 뭔가 복받쳐 오르는 감정으로 눈물이 그렁그렁 매달려있다.
주인이 그 중의 한 사람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친구여 내가 네게 잘못한 것이 없노라 네가 나와 한 데나리온의 약속을 하지 아니하였는냐, 네 것이나 가지고 가라 나중 온 이 사람에게 너와 같이 주는 것이 내 뜻이니라. - 마태복음 20장 13~14절
기독교인이지만, 성경을 읽다보면 참 '내 머리로는 이해 불가한' 이야기들이 참으로 많이 나온다. 그리고 이 마태복음의 포도원 일꾼 비유는 탕자의 비유와 함께 나에게는 가장 이해가 안되는 비유중에 하나였다. 포도원에 일꾼을 모은 주인은 오전부터 일한자와 오후부터 일한자에게 모두 똑같이 품삯을 나누어준다. 그리고 먼저 온자가 어찌하여 우리를 나중에 온자와 같이 취급하냐고 따지자, '나중 온 이 사람에게 너와 같이 주는것이 내 뜻' 이라고 주인은 말한다.
이 부분을 읽으면서 정말 어찌나 황당하던지. 나는 내가 먼저 온 일꾼도 아니건만, 왠지 모를 억울함에 머리를 쥐어 뜯어야만 했다. 대체, 왜, 포도원의 주인은 나중 온 자에게도 똑같이 임금을 주었던걸까. 이건 아무리봐도 부당한 처사가 아닌가.
그러나, 러스킨은 이것이야 말로 진정한 경제학이라고 말한다. 나중에 온 사람은 특별히 게을러서이거나, 능력이 없어서가 아니라 단지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일을 못했을뿐이라고 여기고 있기 때문이다. 나중에 온 자들 또한 먼저 온 자들이 그랬던것처럼, 아침에 일자리를 구할 수 있었더라면 그들 또한 온전히 일하지 않았겠는가.('나중에 온 자'들은 일을 구할 생각이 없던 게으른 자들이 아니라 구하려 했으나 쓰는 사람이 없어 일을 하지 못했던 자들이다). 따라서, 단지 늦게 일터에 왔다는 이유만으로 임금의 차별을 둘 수 없다는게 러스킨의 논지다. 인간중심적인 사고방식, 이 얼마나 혁명적인가.
사람들은 부가 절대적인 것이어서 경제학의 일정한 가르침에 따르기만 하면 누구나 다 부자가 될 수 있는 것처럼 말하고, 그렇게 쓰기도 한다. 하지만 원래 부는 전기와 비슷한 힘이어서, 그 자체의 불균형 또는 자기부정을 통해서만 작용한다. 여러분의 주머니 속에 들어 있는 1기니의 힘은 여러분 이웃의 주머니 속에 1기니가 없다는 사실에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다. p86
러스킨은 부가 절대적인 개념이 아님을 일깨운다. 나의 두툼한 주머니는 이웃의 빈곤한 주머니를 전제하고 있음을 깨달으라고 말한다. '부' 라는 명목하에 사람들이 즐기려는 '사람에 대한 지배' 를 일깨우며, 그것을 함부로 사용할 때 그것은 '진정한 부' 가 아니라 추악한 탐욕에 다르지 않다고 밝힌다. 러스킨이 말하는 진정한 부는 결국 '애정' 에서 비롯된 '나눔' 이고, 그 '나눔' 을 통해 빛나는 '행복한 인간' 에 있다.
가장 부유한 나라는 최대 다수의 고귀하고 행복한 사람을 양성하는 나라이고, 가장 부유한 사람은 자신의 생명의 기능을 최대한 완벽하게 하여 그 인격과 재산으로 다른 사람들의 생명에 유익한 영향을 최대한 널리 미치는 사람이다. 이상한 경제학이라고 생각할지 모르나, 사실 이것은 지금까지 존재한 유일한 경제학이고, 앞으로도 다른 경제학은 있을 수 없다. p197
먼저와서 일하든 나중에 와서 일하든 자신이 할 수 있는만큼의 노동을 다하고, 그 만큼의 합당한 댓가를 받으면 그만이다. 그곳에서는 남과 나를 비교하여 저울질하거나 남보다 우위에 서려는 헛된 욕심이 설 자리가 없다. 어느 자리에 서있든, 사람이 자기 스스로의 직분에 충실하고 그만큼의 인정을 받는 것. 그것이 성경에서 말했던 천국이고, 러스킨이 설파하는 '인간의 얼굴을 한 경제학' 인것이다.
이 책은 '너무나 인간적인' 이야기를 담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어쩌면 '현실과 동떨어진 이상' 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분명하게도 오늘날의 많은 사람들은 '합리성' 과 '이기' 를 넘어서 '애정' 과 '믿음' 에 바탕을 둔 '경제활동' 을 영위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맹세컨대, 한달에 100여만원을 작은아버지로부터 받으면서도 투덜거리며 일했었지만, 만약 똑같은 일을 이모나 외삼촌을 위해서 했더라면 훨씬 적은 돈으로도(설사 돈을 받지 않는다하더래도) 즐겁게 일했을것임을 안다. 이것은 '비합리적' 이지만 진실이다. 그래서, 내겐 러스킨의 경제학이 '이상에 치우쳐진' 소리로 들리지 않는다. 그가 옳다. 돈보다 고귀한, 경제학의 최대 최대변수는 다름아닌 '사람의 애정' 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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