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 박민규 지음/예담 |
나는 언제나 사랑은 그런것이라고 생각해왔다. 그것은 느닷없이 찾아와서, 마음의 문고리를 흔들고, 아무리 열어주지 않으려고 저항해도, 결국은 마음의 틈새를 비집고 들어와버리는것이라고. 하여, 나의 마음속엔 언제나 누가 보더라도 사랑에 빠질만한 요소를 다 갖추고 있는 사람을 사랑하는것은 진정한 사랑이 아니라고 여겼고, 처음부터 어떠한 인연을 전제로 한 소개팅같은것은 진정한 사랑에 있어서는 말도 안되는 요소라고 생각해왔다.
아직도 불완전한 인간인 내가, 겨우 사랑에 대해 촉발할 수 있는 이미지는 드라마속이나 영화속같은 근사한 모습에 불과하다. 아무리 찢어지게 가난해도, 여자는 모름지기 김정은 정도의 깜찍함을 지녔고, 제 아무리 세상에서 무지렁이 취급받는 남자지만 모름지기 그 비주얼은 소지섭쯤은 되어야 한다. 우리는 늘 그런 사랑만 봐왔다. 물론, 드라마라서 그렇겠지만, 모두가 좋아할 수는 없어도 한 가지 치명적인 매력은 있어야만 사랑하고, 사랑받는것은 당연한 이치가 아니겠는가. 그것이 외모든, 부든, 지식이든, 뭐든지간에.
여기, 그런면에 조금 특별한 사랑이 하나 있다. 여자에 대해서 말하자면, 여자는 못생겼다. 그것도 아주 끔찍이 못생겼다. '보통은 되어야지' 라는 사람들의 기준속에 그녀는 철저히 소외된 존재다. 성격도 극히 내성적이고, 똑똑하지만 두드러지지도 않는다. 게다가 집은 가난하다. 키? 크지 않다. 몸대도 좋을리 없다. 그녀는 사랑을 촉발시킬 어떠한 요소도 가지지 못했다. 그런데, 한 남자가 그녀를 사랑하기 시작한다. 이유는, 없다. 사랑은 때로는 그런것이 아닌가.
다른 누구도 아닌 박민규가 사랑이야기를 한다고 했을때 나는 갸웃거렸다. 박민규와 로맨틱함은 어쩐지 어울리지 않았다. 진짜 인생은 삼천포에 있다며 여유부리고 살자던 그가 아닌가. 기린이 된 아버지와 아들을 나란히 앉게했던 그가 아닌가. 박민규는 로맨틱함보다는 철저한 휴머니즘이 어울리는 작가였다. 그런데 가만. 로맨틱함과 휴머니즘은 왜 공존할 수 없는가. 오히려 휴머니즘이야말로 진정한 로맨틱함의 시작이 아닌가. 과연, 박민규는 가슴 시린 사랑이야기를 훌륭히 써냈다. 휴머니즘이 담긴 로맨틱함은 사람의 마음을 극히 섬세하게 감동시켜 주었다.
소설을 읽으며, 몇 번을 가슴을 진정시켜야 했다. 박민규 특유의 내뱉는 문체에서 그 설렘은 배가 되었다. 못생긴 여자와 잘생긴 남자의 사랑이야기. 변형된 신데렐라적 도식을 지녔으면서도, 이 이야기는 전혀 통속적이지 않았다. 남자가 무척이나 혼란스러워해서 좋았다. 멋있는척을 하지 않아서 좋았고, 실제로 별로 (잘생기긴 했지만) 멋있는 구석이 없어서 좋았다. 조심조심 내뱉는 말이 좋았고, 쉽게 다가서지 않는 그 모습이 좋았다. 그녀에 대해서는, 사실 별로 할 말이 없지만 그런 남자와 그런 남자의 사랑을 받는 그녀의 사랑이 아름다웠다.
사랑은 그저 '마음 흐르는대로' 가는것이 제일이다. 어울리지 않는다는 주변의 조롱이나, 그들을 둘러싸고 보이는 편견들. 그런것들을 재고 빼고 더하는건 수학이지 사랑이 아니다. '그런 순간이 있는법이다' 라고 밖에 설명할 수밖에 없던 그들의 만남과 이별, 그리고 재회가 담겨진 이 소설이 무척이나 맘에들어 나는 두고두고 이 소설을 곱씹을것만 같다. 사랑'도' 하는 시대에 사랑'만' 하는 사람들. 이 잔머리 쓰지 않는 사랑덕분에 나는 따뜻한 가슴으로 가을을 맞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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