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센트 반 고흐가 일본풍으로 물빛 하늘색을 써서 환하게 그린 <아몬드 꽃>에도 실은 억겁의 기다림이 숨어 있어요.
트로이 전쟁 때 그리스를 승리로 이끈 데모폰이라는 장수가 있었어요. 그는 전쟁 후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어느 성에 잠시 머무는데, 그것에서, 필리스를 만나 사랑에 빠지게 되지요. 고향 아테네에서는 기다리는 가족들이 있기에 그 성에 오래 머무를 수 없었던 데모폰은 집에 다녀오겠다고, 조금만 기다려달라고 말하고 길을 떠났지요.
누군가를 기다려 본 사람만이 그 시간이 얼마나 힘겨운지 이해할거에요. 1분 1초가 백년 같았던 필리스는 아무리 기다려도 남자가 오지 않자 고통과 절망감으로 스스로 목숨을 끊어버립니다. 그리고 그곳에 아름드리 아몬드 나무가 자라났어요. 그제야 돌아온 데모폰은 눈물을 흘리며 "미안해, 미안해" 하며, 아몬드 나무에 입을 맞추었어요. 그러자 울음을 터트리듯, 봇물이 터지듯 아몬드 나무에서 꽃잎이 돋아났다고 하네요. 반 고흐가 그린 그림이 바로 이 장면이에요.
이 작품은, 1890년, 그러니까 반 고흐가 죽던 해에 그린 것이지요. 늘 믿고 의지하던 동생 테오에게서 예쁜 딸이 태어나자, 삼촌이 된 고흐는 조카가 생긴 기쁨에 이 그림을 그려 선물했다는군요. 아주 맑은 하늘색을 어린 조카는 무척이나 좋아했고, 숙녀가 될 때까지 늘 침실에 걸어 두었다고 합니다. ... 반 고흐의 조카에게 <아몬드 꽃> 은 자신의 탄생을 기뻐해준 삼촌에 대한 막연한 그리움이 아니었을까요.
- 이주은, <다 그림이다> 中
아는 만큼 보인다. 그리고 역시, 알면 알수록 그 대상을 사랑하게 되나보다. 처음 그림을 봤을땐 '그러려니' 하고 책장을 넘겼는데, 이 설명을 듣고나서는 마음이 찡해서 그림을 들여다보게 되었다. 슬펐다. 평생 우울하게 살아간 화가 고흐, 그가 조카에게 선물한 그림. 억겁의 기다림, 다시 올 수 없지만 여기 그대로 남아있는, 그 절절한 그리운 마음들. 누군가를 향해 애타는 마음을 표현한 한 장의 그림, 고흐의 아몬드 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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