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어디로든 데려다 줄 수 있는 상상력 하루 종일 10년전으로 돌아간다면? 하고 망상을 펼쳤다. 2002년이다. 나는 교복을 입고 있고, 지금보다는 훨씬 말랐고, 촌스러운 헤어스타일을 고수하고 있다. 복도를 걷자 낯익은 얼굴들이 보인다. 히히히. 너희들 정말 촌스러웠구나? 지금도 친하게 지내고 있는 친구들의 10년 전 모습을 보며 씨익 하고 웃어보였다. 오랜만에 보는 선생님들도 무척이나 반가웠다. 가만 보자, 2002년에는 무슨 일들이 있지. 아, 여름엔 월드컵이 열릴거고, 가을엔 <네 멋대로 해라>가 할테고, 또... 그래, 12월에는 대통령 선거도 있겠구나. 2002년, 그곳에는 노무현 대통령도 살아있었다. 나는 살아있는 그를 다시 만날 생각에 가슴이 뛰었지만, 어쩌면 또 이별을 반복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서글퍼지기도 했다. 여튼, 나는 과거로 돌아와 있었다. 10년전 2002년으로.
집에 가니 '이렇게 젊었었나?' 싶은 부모님의 얼굴이 보였다. 아빠는 꽤 풍채가 좋으시고, 엄마는 참 어렸다. 엄마에게 어리다고 하는게 웃기는 일이지만, 그래도 미래에서 온 나의 눈에는 엄마가 무척 어리게 느껴졌다. 동생은 겨우 중학생이었다. 완전 꼬꼬마. 나중에 저 어린것이 나보다 먼저 취직을 한다는 생각을 하니 슬몃 웃음이 나왔다. 한편으론 짠하기도 했다. 너도 꿈 많고 하고 싶은것 많은 여중생이었는데... 자라서 그냥 직장인이 되는구나.
핸드폰은 플립이었다. 컬러도 아니고, 물론 카카오톡 같은것도 없었다. 미래에서 온 나는, 이 플립 핸드폰을 들고 골동품을 발견한 양 셀카라도 찍어 '인증' 이라는것을 하고 싶었지만, 2002년의 나에겐 디지털 카메라같은건 없었다. 아, 2004년이 되어서야 디지털 카메라라는것을 처음 샀었지. 기억을 더듬어보고, 2년 후에나 디카를 갖게 된다는 사실에 조금은 답답해졌다.
미래에서 온 나는 영어가 무척 쉬웠다. 2012년의 대학 졸업자인 나로서는, 고등학교 교과서 정도의 영어는 정말 껌이었다. 하지만 문제는 수학이었다. 수학을 놓은지 어언 몇 년이던가. 그때도 수학을 잘하진 않았지만, 20대의 머리로 푸는 10대 수학은 쥐약이었다. 물론, 그래도 유리한 점이 훨씬 더 많았다. 언어도 쉬웠고, 사탐도 쉬웠다. 그렇지만 수학은 정말... 어려웠다. 나는 갑자기 다시 수학공부를 해야한다는 사실에 2002년으로 돌아온 내 삶이 너무도 절망 스러웠다. 헐, 그럼 나 수능도 또 봐야되는건가?
레드 썬! 그래, 물론 나는 현재에 있고 타임머신으로 과거를 간다든가 하는 판타스틱한 경험은 하지 못했다. 하지만 눈을 감았고, 상상을 했고, 상상속의 나는 정말로 2002년 그 시절로 돌아가 있었다. 나의 상상력은 그 때 그 시절의 친구들을 불러냈고, 수업시간을 재현했으며, 그때의 감정을 느끼게 만들어 주었다. 얼마나 멋진가, 이 상상력이란 놈은. 이 기억력이라는 놈은 말이다!
상상력이 있는한, 나는 어디든 갈 수 있고 무엇이든 할 수 있다. 그러니, 이것은 어떠한 돈이나 힘보다 위대하다. 아, 그러니 어찌 이 상상력을 칭송하지 아니할 수 있겠는가. 어디든 언제든 나를 어떤곳에든 데려다주는 상상력, 최고다. AWESOM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