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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앞의 생178

바람 좋은 날. 과외 끝나고 집에 오는 길, 바람이 좋았다. 도서관에도 들리고 하면서 일부러 걸었다. 하늘은 푸르렀고, 햇살은 따뜻했다. 그리고 바람이 좋았다. 걷다보니 배가 고팠다. 집에 와 옥상에서 고기를 구워 먹었다. 오랜만에 먹는 삼겹살은 일품이었고, 그곳에서도 바람이 좋았다. 아빠가 너는 왜 소설을 읽느냐고 물었다. 난 '다른 사람들의 삶을 알 수 있으니까' 라고 대답했다. 아빠는 하하하 하고 웃었고, 아빠가 웃는 곁을 스치는 바람이 좋았다. 배가 불러서 운동을 하러 갔다. 걷고 걸으니 또 바람이 좋았다. 운동장에서 중학생 남자애들이 불꽃놀이를 했다. 분위기는 없고 시끄럽기만 한 로켓을 쏘아대서 궁둥이를 발로 걷어차주고싶었지만, 저들도 바람이 좋아 나왔겠지 싶어 말았다. 집 근처 공원 벤치에 앉아 허공을 바라보.. 2010. 10. 9.
[내 삶의 길목에서] 가르쳐주셔서 감사합니다 교회 꼬맹이들을 모아놓고 영어를 가르치기 시작했다. 요즘같은 시대에는, 초등학생일수록 영어를 잘 한다지만 이 녀석들은 낫놓고 기억자도 몰랐다. 아니, 영어니까 에펠탑열쇠고리를 쥐어져도 A자도 모른다라고 말해야 맞으려나. 쨌든 그만큼 영어의 영자도 모르는 녀석들이었다. 기초 지식이 없는건 둘째치고, 초등학생이라그런지 집중력도 빵점이었다. 하나 가르쳐주면 말도 안되는 소리를 지들끼리 지껄이며 깔깔거리고, 무서운 표정을 짓고 '까불래' 하고 으르렁거려도 소용없었다. 아씨, 내가 왜 이러고 있어야만 해, 누가 알아주는것도 아닌데! 이 꼬맹이들을 가르친다는게 과연 가능한 일일까싶었다. 그래도 나랑 만나고 싶어서 어제부터 전화를 해댔던 녀석들을 매몰차게 뿌리칠수는 없었다. 내가 여기서 포기하면, 영어의 영자도 모르.. 2010. 10. 8.
의식의 흐름 개놈들아, 라는 말이 머리속에서 자꾸 맴돈다. 대상이 누구인지를 생각해보았으나, 딱히 없다. 그냥 '개놈들아' 다. 이건 뭐 분노도 아니고, 무의식에서 튀어나오는것 같긴 한데 자꾸만 떠오르니 상스럽기 그지없다. 아, 나는 양반가문 출신인데 왜 이럴까 싶지만 또 '개놈들아' 다. 듣는 '개놈들아' 너희들의 정체를 밝혀라, 싶지만 누구를 향해 외치는 지도 모른 괜한 욕지거리. 나는 왜 이런 말들을 입에 달싹거리며 내뱉지 못해 안달하는걸까, 교양없게시리. 슈크림빵이 먹고싶다. 빵빵하게 슈크림이 담겨서 터져버릴것같은 그런 슈크림빵. 절대로 흰 크림이나 모카크림이어서는 안되고, 노오란 슈크림빵이어야만 한다. 슈크림. 발음하자 마자 달콤함이 온몸속에 퍼지는듯한 기분이다. 슈- 크- 림- 일부러 길게 끌어본다. 더욱.. 2010. 10. 7.
가난한 심사 고등학교 동창 결혼식에 10만원을 썼다. 축하해주고 싶은 마음은 컸지만, 것 보다 허한 주머니가먼저 신경쓰여 즐겁지만은 않은 시간이었다. 결혼식이 끝나고 친구들끼리 카페에 들려 못다한 이야기를 나눴다. 더치페이로 내야할 돈은 팔천 얼마였고, 나는 지갑을 털털 털어 8천원만 내며 '이것밖에 없어' 라며 멋적은 미소를 지어보였다. 다행히도 옆의 친구가 9천원을 내서 나의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었다. 이것밖에 없어, 라고 말한적은 많았지만 그동안의 '이것밖에 없어' 가 '현재 지갑에 이것밖에 없어' 에서 '현재 지갑에' 가 생략된 말이었다면, 그날의 '이것밖에 없어' 는 정말로 '내게 남은 돈 전부' 를 말하는 것이었기에 마음 한켠이 헛헛해졌다. 텅텅 비어버린 지갑을 보며 '이게 나의 현실인가' 싶어 울적해졌다.. 2010. 10.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