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결과가 나왔다. 패했다. 심상정 노회찬의 당선과 통합진보당의 3당 정착이라는 의미있는 결과가 나오기도 했지만, 결론적으론 패한 선거였다. 김용민은 낙선했고, (똑같이 논란이 거셌던 문대성과 김형태는 당선되었는데도!) 새누리당은 1당이 되었고, 가카와 그네공주는 웃었다.
실패자에겐 으례 가혹한 세상이라는건 알고있었지만, 선거결과가 나오자마자 사람들이 기다렸다는듯이 나꼼수를 물어뜯기 시작했다. 김용민때문에 민주당 표를 깍아먹었다는둥, 나꼼수는 진보세력의 X맨이라는둥, 그들을 비웃고 조롱하며 희생양 찾기에 급급한 모습이었다.
그렇게 하는게 얼마나 쉬운일인지 안다. 왜 졌지, 이번 실패에서 우리가 얻을 교훈은 뭐지, 다음에 어떻게 하면 이길 수 있지, 를 고민하는것보다는 그저 한명을 타겟으로 잡고 '너 때문이야!' 하는게 쉽고 편한 해결책이니까. 오세훈이 당선되었을때 노회찬에게 쏟아지던 비난도 그랬다. 앞뒤가리지 않고 한놈만 패며 달려들었다. 너만 아니었어도.. 그렇게 비생산적인 가정법이 이어지며 비난이 쏟아졌었다.
하지만, 김용민에게 쏟아지는 그 비난이 과연 정당한가. 그는 현 정권의 패악에 분노했고, 그래서 세상을 바꾸고 싶었고, 국회의원이라는 수단을 통해서 권력을 국민에게 다시 돌려주고 싶었던것 뿐이다. 막말을 해서 그게 논란이 됐고, 표를 깎아먹었다고 주장하지만, 최연희는 기자를 성추행하고도 당선이 됐고, 주성영은 룸살롱 이야기가 자자한데도 개의치않고 당선이 되지 않았던가.
물론, 김용민은 잘못했다. 그의 막말은 팩트다. 하지만 그것 때문에 떨어졌다고 하는것은 잘못된 계산이다. 그가 민주당의 표를 깎아먹었다는 얘기도 우스운거다. 어차피 무결한 후보란 있을 수 없다. 김용민은 부정적인 모습이 유독 많이 노출됐고 그 과정에서 지역 유권자들에게 선택받지 못했을뿐이다.
나는 김용민이, 나꼼수 멤버들이 행여 이번 사건을 계기로 조금이라도 기죽지 않았으면 한다. 한 번이라도 나꼼수를 즐겁게 듣고 그들을 좋아했던 사람들이 이번 패배를 계기로 돌아서고 비수를 꽂지않았으면 좋겠다. 비판을 하지 말자는 얘기도 아니고, 무조건 그들을 옹호하자는 얘기도 아니다. 그렇지만 지금처럼 그들이 힘들고 약해졌을때에는, 비난보다는 위로를, 분노보다는 격려를, 그렇게 조금은 기다려주고 힘을 실어주었으면 좋겠다.
노무현 대통령이 떠나고 내가 가장 후회했던것은, 끝까지 함께하지 못했음이었고, 그가 가장 연약하고 힘들때 뒤돌아섰던 것이었다. 나 좋다고 와와 거리면서 영웅 만들어놓고, 나 살자고 또 인상쓰며 쉽게 뒤돌아섰던 내 자신이 부끄러웠다. 그리고 다시는 그런 실수를 되풀이 하지 않겠다고 다짐했었다.
나꼼수와 김용민은 이번에 실패했고, 잘못했고, 또 실망을 주었다. 그렇지만, 그래서 뭐? 그래도 지금은 절대로 그들의 손을 놓지 않겠다. 비판과 질책의 마음을 꾹꾹 눌러놓은채로 그들이 잘나가고 다시 성공했을때, 씩씩거리고 화를 내며 그때가 되면 돌려주고 싶다.
그게, 내가 좋아했던, 그리고 열광했던 사람들에게 내가 해 줄 수있는 최소한의 예의고 염치라고 생각한다. 나꼼수는 늘 우리에게 쫄지마,라는 응원의 메시지를 건네주었다. 그리고 이제는 내가 그들에게그 목소리를 다시 돌려줄 차례다. 김어준, 주진우, 정봉주... 그리고 김용민. 쫄지마! 비가 오면 그 비를 맞으면서 함께 간다. 일단은 그럴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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