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무살. 입 밖에 소리내어 외치기만 해도 눈부실 정도로 빛났던 나이. 고등학교 3학년의 딱지를 뗀 지 얼마 되지 않던 대학교 1학년의 여름날. 나는 친구 두명과 함께 훌쩍 바다로 떠났다.
무조건 바다를 보자, 라는 호기에 달려갔던 정동진. 여행이라고는 수학여행의 일천한 경험이 다였던 도시촌뜨기들에게 바다를 본다는것은 무조건 강원도에 가는것을 뜻했고, 주머니가 가벼웠던 관계로 무박여행을 가려면 밤 기차로 내내 달리는 정동진밖에는 마땅한 장소가 없었다.
도착하자마자 마음을 시리게 해줬던 정동진의 일출. 그러나, 여행은 딱 거기까지만 좋았다. 바다를 보고, 일출을 보자! 라는 단순한 목표에 아무것도 준비되지 않은 여행. 그렇다고 바다에 뛰어들 만용따위도 부리지못할 순진한 세명의 대학 신입생에게는 아무것도 할만한 것이 없었던 것이다.
바닷가 거닐기, 조개 모으기, 모래사장에 발자국 찍기. 그게 우리가 길고 긴 낮과 밤동안 정동진에서 한 전부였다. 물론 틈틈이 사진도 찍어주었지만, 드넓은 바다에서 물에도 들어가지 않고 남긴 추억이래봤자 거기서 거기일 뿐이었다.
배는 고팠고, 먹을 건 편의점에서 파는 정말로 '맛대가리 없는' 짜장등이 다였다. 냄새로보나 비주얼로보나 우리를 유혹하는 조개구이는 빈곤한 청춘의 주머니를 탈탈 털어도 어림도 없는 가격이었고. 그렇게 시간이 지나, 이윽고 밤 기차를 타고 다시 역으로 돌아갈 시간...
하루종일 주린배를 움켜잡고 바닷가만 하염없이 걸었던 우리는, 누가 먼저랄것도 없이 모래사장에 벌렁 드러누워버렸다. 기차시간까지 남은시간은 30여분. 아무도 없는 정동진 바닷가에 드러눕자, 그제서야 바다위로 쏟아지는 별빛에 '여길 이렇게 올려다보려고 이곳에 왔나보다' 라는 감탄사를 연발할 수 있었다.
불어오는 바닷바람과 저 멀리 해안가에서 드문드문 보이는 불꽃놀이, 그리고 드러누운 머리위로 쏟아지던 별들. 비록 어두워서 잘 보이지는 않았지만, 나는 그때 누워서 보던 하늘과 바다를 잊을수가 없다. 스무살의 밤바다는, 그렇게 보이지않는것들을 느끼고만 있어도 좋았고 행복한 추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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