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찌하다보니 이번 학기에 사회학과 전공과목을 2개나 수강한다. 타전공을 들을때면, '역시 전공자는 다르구나' 하는 면을 느끼곤 했었는데 이번 사회학과 전공 과목을 수강하면서도 그것은 예외가 아니었다.
어제는 친일파문제에 대해 발표하고 그에 따라 토론하는 시간을 가졌다. 친일의 뿌리 및 행적 그 변천과정을 1시간동안 쭈욱 훑어보고 나서 나머지 1시간동안 자유롭게 의견을 개진하는 식이었다. 토론을 1시간이나 한다길래 솔직히 그게 가능할까 싶었다. 주제를 미리 알려주고 그것에 대해 준비해오는식의 토론이 아니라, 발표팀이 발표하면 그 주제를 즉석에서 생각해보고 나누는것이었기 때문에 얼마나 다양하고 깊이있는 이야기가 나올 수 있을까 싶었던 것이다.
하지만, 토론이 시작되자 그들(사회학 전공자)은 무지 흥미로운 주제들을 꺼내오며 이야기를 확장해 나가기 시작했다. '해방직후가 친일파들에겐 가장 큰 위기였을텐데, 그들은 그 적대감속에서 어떻게 명맥을 이어왔는가' '북한과 프랑스는 반민족행위자를 철저히 벌했는데, 우리나라는 하지 못한 이유가 무엇인가' '반공주의 이데올로기가 더 이상 먹히지 않는 시점에서, 친일파들이 어떠한 식으로 자기살길을 모색하고 있는가' 등등.. 턱을 괴고서 '방청객' 모드로 그들의 토론을 지켜보노라니 한 시간이 훌쩍 지나가 버렸다.
솔직히 정말 감동했다. 대학생들의 지적 수준 어쩌고를 논하지만.. 이렇게 수업시간에 치열한 논리와 자기생각을 펼칠 수 있는 젊음들이 아직도 존재하고 있다는것에. 100분토론 보다 재미있었고, 흥미로웠다. 내 또래의 입에서 '반민족행위처벌법' 이라는 단어를 듣는것은 정말이지 놀랍고도 신비한 경험이었다. 아, 이런 애들이 정말 있구나. 나도 나름 사회과학 서적도 읽어오고, 사회현상이나 근현대사에 대해 알고 있다고 자부했는데, 이들은 정말이지 과거와 현재 미래의 방향까지도 모색하고 다른 나라의 사례와 비교분석하며 '왜' 라는 질문을 끊임없이 던지고 있었다.
넋 나간채로 그렇게 수업을 마치고 돌아오며, 나는 게시판에 붙은 <정치 사회 동아리 회원모집공고> 한 구석에 적혀있는 '필독도서' 를 빠르게 머리속에 메모했다. 몇 개는 읽었고, 몇 개는 읽으려고 했었으며, 몇 개는 처음보는 도서들이었다. 아, 아직도 세상에 이렇게 배울게 많다니. 남들보다 대학도 오래다녔으면서, 대학졸업을 앞두고서도 지식의 길은 아직도 멀다 느낀다. 많은것을 배우고 느낄 수 있던 수업시간, 나는 4학년 2학기가 되서야 어쩐지 대학생의 초심을 찾아가고 있는듯한 기분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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