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딜레탕트

담벼락에 대고 소리라도 질러라, <아큐 어느 독재자의 고백>

by 김핸디 2010. 10. 7.



달랑 셋. 이 연극을 둘러싼 인물들이다. 하지만, 그러면 어떤가. 그로토프스키는 영화와는 다른 연극의 본질을 찾기 위하여 '가난한 연극' 을 주장하지 않았는가. 말하고자 하는 배우와, 그것을 들으려는 관객. 두 가지면 연극은 가능하다. 그러니 '달랑' 셋이라고 표현하는것은 어쩌면 적절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배우 명계남이 무대에 섰다. 무대에 서왔던 배우에게 그것이 뭐 얼마나 대단한 일이냐마는, 모노드라마라는 점에서 배우 명계남은 주목할만했다. 물론, 중간중간 여균동이 가세하긴 하지만, 어디까지나 <아큐 어느 독재자의 고백>은 명계남의 극이었다. 극은 액자식으로 구성되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극과 현실이 오가는 구조였다. 그러나 현실과 극의 경계는 그닥 크지 않았다. 현실같은 극과 극적인 현실때문이었다.   

재미있었다. 내용보다는 연출방식이 좋았다. 특정 정치인과 현실을 비판하는 내용이었지만, 무겁거나 지루하지는 않았다. 연실 웃음이 터지면서도, 메시지를 놓지 않는 연극이었다. 현실과 극을 오가는 중간중간 보이지 않는 긴장이 좋았다. 극속의 명계남과 극밖의 명계남이 무대를 채우는 분위기의 차이, 나는 그 보이지 않지만 살아움직이는 잔영이 좋았다.

연극은 극 속 명계남의 독백처럼 '의미' 를 관객들에게 묻는다. 연극이 무슨 소용이 있을까, 우리끼리 모여서 이렇게 얘기하는게 무슨 소용이 있을까. 그러면서도 극을 올린것은, 아마 말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답답함 때문이었을것이다. 명계남은 그렇게 보이지 않는 허공에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그는 배우였기에 스스로가 할 수 있는 역할을 찾아 보여주고있었다.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우리는 시대를 지나가며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담벼락의 대고 소리라도 지르라던 김대중 대통령의 말이 머리를 스쳤다. 방관은 때때로 그 자체로 악을 만든다. 눈감고 귀닫으면 편하게 살 수 있으나, 깨어있어야만 하는 이유다. 연극은 웃으면서도 입맛이 썼다. 그 씁쓸함을 머금고 나의 역할을 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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