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멘붕
1. 멘붕의 근원. 12월 19일 대통령 선거. 친구와 함께 두시간을 달려서 투표를 하고, 높은 투표율에 잔뜩 고무되어 있었다. 출구조사 결과를 많은 사람들과 확인하고 싶어서 광화문 행. kbs측에서 마련한 대형 스크린으로 출구조사를 기다리던 3분간은 잔뜩 흥분으로 몸이 달아있었다. 10, 9, 8, 7... 다같이 카운트를 하고 나온 출구조사 결과. 그것은 완전히 기대를 저버리는 것이었다. 거대한 침묵. 누가 먼저랄것도 없이 사람들은 뿔뿔이 흩어졌다.
2. 친구와 실내로 들어와 눈물을 터뜨렸다. 평생을 믿고 있던 신념이나 가치관이 붕괴되는 순간이었다. 정직, 성실, 정의와 같은 가치들이 인정받지 못하는 세상이었다. 사기를 쳐도 좋으니 내 배만 불려다오, 라고 선택했던 사람들은 5년 후에도 공존보다는 이익을, 분노보다는 망각을 선택했다. 김수영 시인의 말마따나 이 나라에서는 공산당만이 아니라면 누가 죽어나가도, 몇 백 몇 천이 죽어나가도 눈 하나 깜빡하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3. 차마 현실을 인정할 수 없어서 호프집에 들어와 개표방송을 지켜봤다. 역전 하겠지. 오차범위안에 접전에, 최종 투표율이 반영 안 된 결과라잖아. 그렇게 서로 수다떨기 좋아하는 친구와 내가 별 다른 말 한 마디 없이 한숨 쉬고 술 마시고 한숨 쉬고 또 술을 마셨다. 그리고, 보게 된 유력, 그리고 확실 이라는 글자. 내 평생 그렇게 잔인한 단호함은 처음이었다. 우리는 자리에서 일어섰고, 상처받았다.
4. 12월 20일. 선거 다음날인 하루는 TV도, 포털도 보지 않고 트위터도 하지 않았다. 현실 부정이었다. 그 사람의 이름을 듣는것도, 대통령으로 인정하는것도, 나에게는 너무 힘든 일이었다. 나도 모르게 잠이 쏟아지던 하루였다. 결국 저녁 8시부터 잠이 들었다. 그리고 오늘 오전 9시까지 잠을 잤다. 너무나 평온했고, 기분 좋은 숙면이었다. 눈을 떴다. 하지만 그동안 눈 뜨자마자 습관처럼 해오던 트위터를 하지 않았다.
5. 개인에게 닥쳐올 수 있는 어떤 경우에도 '나는 이제 잘 견뎌낼 수 있어' 라고 생각해왔다. 타인의 시선에도 덤덤해졌고, 실패가 주는 유용함도 깨달았으며, 아무것도 없을 때 시작할 수 있는 가능성과 용기에 대해서도 알게 되었으니까. 하지만, 이런 경험은 처음이다. 남의 것을 빼앗으면 안 된다, 사람을 함부로 대해서는 안 된다, 정의는 승리하고 진실은 이긴다... 역사는 그래도 앞으로 나아간다. 평생 믿고 있었던 신념들이 '아니' 라고 부정당하는 현실 앞에서, 도통 어떻게 해야할지를 모르겠다.
6.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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