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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의 독서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 <백수 알바 내 집 장만기>

by 김핸디 2010. 10. 18.
백수 알바 내 집 장만기 - 8점
아리카와 히로 지음, 이영미 옮김/비채


  야, 나 재규어 살래! 너는? 고등학교때 친구와 재규어를 타고 다니는 주인공이 나오는 영화를 보고나서 내뱉었던 말이다. 친구도 물론, 나는 페라리~ 라고 응대해주었다. 우습지만 장난이 아니었다. 고등학교때는 당연히 명문대에 갈 수 있을줄 알았고, 명문대만 가면 탄탄대로가 열려서 그야말로 재규어 정도는 끌고 다닐 줄 알았다.

  야, 우리 평생에 아우디 한 번 탈 수나 있을까? 재규어 타령을 하던 고등학생들은 대학에 와서야 현실을 깨닫고, 아우디 전시장을 지나가며 주절거렸다. 나는, 난 그래도 벤츠는 타봤는데 했고 친구는 진짜? 좋았겠다 를 연발했다. 그렇게, 가난한 청춘에겐 외제차도 잡기 힘든 꿈이 되어버렸다. 하물며 집? 나는 반 장난으로 동생에게, '야 내가 첫째니까 집은 물려받을게' 라고 공공연히 선언할 정도였다.

  그런데 백수알바가 내집을 장만했다니? 제목만으로도 구미가 댕겼다. 물론, 소설이라는걸 알고는 김이 빠졌지만. 그래도 재미있겠다 싶었다. 책은 확실히 흡인력이 있었다. 평범한 대학을 졸업해서 취직은 했지만, 3개월만에 때려친 남자. 그가 보여주는 일련의 행동들이나 대화들은 내게도 익숙한 모습이었다.(아니 물론 나야 이 녀석보다는 훨씬 건전한 정신을 가지고 있지만!)

  아르바이트로 집에 생활비를 보태던 주인공은, 엄마가 우울증에 걸렸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우울증의 근원은 동네 사람들의 괴롭힘. 그때부터 주인공은 취직을 해서 돈을 모은 뒤 집을 사서 이사를 간다, 라는 거창한 계획을 세운다. 하지만 당장 취직부터가 문제였다.

  우여곡절끝에 건설현장에서 잡역부들과 함께 일을 하게 된다. 취직자리 구하기는 여의치 않고, 그나마 돈을 많이 벌 수 있다는 장점이 있어서였다. 그리고 그곳에서 책의 주인공인 세이지는 점점 건실한 청년으로 다시 태어난다. 가족을 지켜야한다는 책임감, 그리고 배운것은 없지만 좋은 사람들의 조언이 자양분이 된 덕이다.

  그리고, 그렇게 마음가짐이 달라진 청년에게 일자리가 찾아온다. 뭐 그 다음부터는 볼 것도 없이 승승장구다. 현장에서 일하던 회사의 사무직으로 취업, 신규직원의 채용까지 담당하면서 회사를 성공적으로 이끈다. 그리고 늘 그러하듯이, 직업과 정신이 반듯한 청년에게는 사랑이라는 달콤한 보너스까지 주어진다.

  책의 내용은 뭐 그럭저럭 진부했지만,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 라는것을 다시 한번 깨달을 수 있어서 유익한 책이었다. 평범한 대졸자였지만 유능한 직장인으로 성장하기까지. 그를 만든것은 재능이나 배경이 아니고, 그 자리에 오른 자의 '책임감' 이었다. 내가 좋아하는 말인 '노력은 배신하지 않는다' 를 잘 보여주는 이야기였다.

  내가 가고싶은 곳보다는, 나를 필요로 하는곳에 가라 라는 격언이 떠오른다. 매슬로우는 인간의 욕구를 도식화하며 '자아실현의 욕구' 를 가장 상위에 올려두었다. 그리고, 어떤 책에 따르면 자아실현이란 '일과 자신이 일치할 때 가능한것' 이라고 한다. 나는 지금 인생에서 가서 중요한 상위 욕구를 실현하는 기로에 있다. 내가 있어야 할 자리는 어디일까. 탐색의 시간이 길다고 결코 주저앉지는 말자고 스스로에게 다짐 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