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슬이 퍼렇던 군사독재시절. 잡혀간 사람들은 지하에서 고문을 당하며 자신의 삶을 낱낱이 기록하는 수기를 써야만 했다고 한다. 쓰고 또 쓰고 또 써서 글이 나올때마다 틀린 부분을 취조당하면서 괴롭힘을 당해야만 했다고. 그리고 그 얘기를 들은 누군가는, 그들이 당한 고통보다는 누군가가 종이한장을 내밀며 '니 인생을 여기에 모두 기록해' 라고 한다면 대체 어디서부터 손을 댈지 모를 그 막막함이 더 괴로울것 같다고 말했다.
요즘의 내가 꼭 이렇게 고문을 당하는것 같은 기분이다. [성장과정] 이라는 네 글자 앞에서 대체 나의 성장과정을 어디서부터 어디서까지 써야하는걸까, 그 수많은 시간들을 어찌 몇백자로 요약할 수 있단 말인가 하고 머리를 쥐어뜯기도 하고, [성격의 장,단점] 앞에서 떠오르는 수백개의 문장과 단어들을 줄을 세워서 정리 하느라고 애를 먹는다. 세상에... 한 인간의 인격체를 단 하나의 키워드나 문장으로 뽑아서 일목요연하게 정리하라니! 이건 내가 맞딱드린 어떠한 작문주제보다 고난이도의 과제가 아닌가. 읅.
그래도 그러한 고민을 하다보면, 자소서가 나름 철학적인 생각거리를 안겨준다는걸 깨닫는다. 나는 어떤인간이냐고? 어떻게 살아왔냐고? 앞으로는 어떻게 살아갈거냐고? 그런 질문들앞에 서게되면... 아, 나는 여태까지 내가 어떤인간인지 야금야금 파악하고 맛보고 인식해왔지 이렇게 총체적으로 나란 인간에 대해서 하나로 묶어내본적이 없었구나. 이런점도 있고, 저런점도 있는데, 아무래도 나를 표현하기엔 이런점이 가장 적절하겠구나. 하는 뭐 이런저런 생각들을 하게 되는것이다.
10월의 마지막날, 취업승리의 깃발을 휘날리겠다고 장담한 2010년도 이제 겨우 두달 남은 시점. 나는 일주일간 준비해온 기업의 채용마감소식을 듣고 얼이 빠져있다가, 다시 또 다가올 공채의 문을 두드리며 키보드를 두드린다. 눈은 아파 죽겠고, 허리도 굳어져온다. 서슬퍼런 독재시절은 끝났건만, 늘 그렇듯 누군가는 이렇게 자신의 삶을 강제로 돌아봐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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