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S
원숭이 - 이사카 고타로 지음, 민경욱 옮김/랜덤하우스코리아 |
이사카 고타로의 2010년 신작. 이것만으로도 내게 이 책을 읽을 이유는 충분했다. 그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작가이니 말이다. 시험기간이다 뭐다 해서 오랫동안 서점을 찾지 않다가, 드디어 어제 영풍문고에 들려 이 책을 모셔왔다. 두근두근하는 마음으로 첫장을 읽고, 둘째장을 읽고, 그렇게 읽어내려가면서 나는 다시 한번 이사카고타로의 매력에 빠져들수 있었다.
<SOS 원숭이>는 그가 늘 천착하는 주제인 '정의' 에 대해 다루는 소설이다. 읽다보면 전작이었던 <피쉬스토리>의 느낌이 좀 많이 나는데, 그도 그럴것이 <피쉬 스토리>가 '노래로 세상을 구한다' 라는 목표를 내세운다면 <SOS 원숭이>는 '이야기가 세상을 구한다' 라는 목표를 가지고 향해 가기 때문이다.
남의 불행을 견디지 못하는 남자, 엔도 지로. 남의 불행 앞에서도 감성보다는 논리로 다가가기에 주저함이 없는 남자, 이가라시 마코토. 이 극과 극의 인간상에 뜬금없이 <서유기> 속 원숭이 한마리가 끼어들면서 이 책의 내용은 흥미롭게 전개된다. 뜬금없이 손오공이 왠말이냐고? 아, 그러니 소설 아니겠는가.
이사카 고타로의 장점은 다소 '판타지 적인 소재' 를 일상속에 잘 버무려 가슴 훈훈한 이야기를 만들어낸다는데에 있다. 말 그대로 죽음을 전하는 주인공을 내세운 <사신 치바>가 그랬고, 종말을 앞둔 사람들의 일상을 그린 <종말의 바보>가 그랬다. 느닷없이 손오공을 등장시켜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과 그들의 소리에 귀 기울이는 가치에 대해 말하는 <SOS 손오공>도 그 장점이 어김없이 잘 드러나는 이야기이다.
'아프다, 아프다' 며 소리내는 우리 주변의 수많은 이웃들. 그리고, 그 이웃들에 소리에 '그러려니' 하는 대부분의 사람들과, 비록 어찌할 수는 없어도 그 '아프다, 아프다' 소리에 귀기울여보는 사람들. 이사카 고타로가 이번 소설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이거다. 세상을 향해 SOS를 보내면, 누군가는 반드시 그 소리를 들어줄거라고. 그리고 그 SOS를 보낸자와 듣는자가 있을때, 세상은 변화될 수 있다고.
나이가 들면서 남의 불행에 무뎌지게 되는걸 느끼고 있었다. 예전에는 '내 고통' 처럼 타인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곤 했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피로감을 느끼게 된 것이다. 그리고 그 피로감의 원인에는 분명 '내가 뭘 어쩔 수 있겠어' 하는 무력감도 존재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사카 고타로가 그의 소설을 통해 이렇게 말한다. 당신은 적어도, 도움이 필요한 자들에게 손을 내밀어줄 수는 있지 않느냐고. '괜찮어?' 라고 다정하게 말을 건네줄 순 있지 않느냐고.
매일 매일 내 삶을 지나치며 들려오는 SOS들. 누군가가 '아프다, 아프다' 하면서 울고 있는 그 순간에 나는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생각해보게 된다. 도울 능력도 힘도 없어서, 타인의 불행 앞에서 그저 끙끙대기만 하던 주인공 엔도 지로처럼, 스스로의 무능을 저주하며 괴로워하기 싫어 고개를 돌리기 애썼던 지난날의 나에게, 이사카 고타로는 늘 그래왔던것처럼 그만의 화법으로 따뜻한 위로를 건넨다. "그걸로 됐어요, 늘 끙끙대도 괜찮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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