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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앞의 생

울먹이는 사람들, 그러나..

by 김핸디 2010. 12. 15.

나는 그늘이 없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 시인 정호승의 말이다. 그리고, 나도 그에 말에 동감한다. 언젠가 문득, 내가 좋아하는 친구가 단 한 번도 힘들다거나 괴롭다거나 하는 내색을 내지 않았다는걸 깨닫고 의아해한적이 있었다. 너는 왜 힘들다는 얘기를 안하는걸까, 왜 아무도 미워하지 않는걸까, 너의 인생은 뭐든지 그렇게 말하지 않아도 '견딜만한' 수준인걸까. 물론, 입밖으로는 한 마디도 내지 않았다. 하지만, 그걸 깨닫고 나니, 나는 왠지 그 친구가 예전만큼 좋지는 않았다.

사람은 참 이상하다. 너무 완벽한 사람에게는 끌리지 않고, 어딘가 상처하나를 담고 있는 사람에게는 주체할 수 없이 마음이 간다. 작가 공지영을 좋아하는 이유는 그녀의 글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녀가 상처받은적이 있었다는 사람이기 때문이기도 하고, 장동건이나 유재석을 내가 별로 좋아하지 않는 이유는 그들이 누구에게나 칭찬받는 사람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파리의연인에서 한기주도 모든걸 다 가진 사람이지만 추억이랄게 하나도 없는 사람이어서 좋았고, 인정옥 드라마속 인물들이 어느 누구하나 빠지지 않고 다 사랑스러웠던 이유도 사실은 모두가 결핍되어 있기 때문이었다. 정말, 그랬다. 상처입을수록, 아파할수록, 더욱 마음이갔고 그 사람을 좋아하게 되었다. 

이유는 아마, 어느 책에서 읽은 것처럼 '인간은 결국 서로의 불행을 털어놓으며 정을 쌓아가는 동물'이기 때문이겠지.



책 속 구절들을 정리해놓은 노트를 펴서 고통 혹은 좌절이나 아픔에 관한 구절들을 찾아보았다. 최근에 서점에서 서서 읽은 <나는 아직 어른이 되려면 멀었다> 에서 보았던

열일곱의 세상도 힘들어요.
나는 지금, 열일곱의 세상밖엔 볼 수 없으니까.

라는 고백이 가장 먼저 눈에 와 닿았고,

사람들은 남들이와서 휘저어놓지 않아도 충분히 힘들다고요.

라던 <멋진징조들> 속의 구절도 눈에 와 닿았다.

그 밖에도,

무사태평으로 보이는 사람들도 마음 속 
깊은곳을 두드려보면 어딘가 슬픈 소리가 난다 - <나는 고양이로소이다> 中


말할 수 없는 우리의 슬픔이 어둠속에서 굳어져 별이 되었다 - <가을문안> 中


제일 슬픈 책들보다 더 슬픈 인생이 있는 법이고,
책이야, 아무리 슬프다고 해도 인생만큼 슬플 수는 없다. - <존재의 세가지 거짓말:50년간의 고독> 中


등의 구절이 산다는것은 언제나 슬픔을 동반하는것이며 슬프지 않은 인간은 없고 다들 얼마간의 아픔속에서 견디고 살아가고 있다는것을 방증해 주고 있었다.

그래, 다들 그렇게 울먹이고 싶을때가 있는거지.


요즘의 나도, 슬프다. 마음의 그늘이 져서인지 얼굴빛마저 어두워졌다. 이게 뜬금없는 센티멘탈과 주기적으로 찾아오는 슬픔에 대한 향유인지는 모르겠지만, 헛헛함이 온열기 앞에서도 쉬이 채워지지 않으니 마음의 문제인듯 하다. 그래도, 우울하지는 않다. 모두들 그렇게 제 각각의 짐을지고 살아가는거니까. 사람들은 울고 상처받고 괴롭다. 하지만 그럼에도 나는 '이것도 다 무슨뜻이 있겠지' 라는 희망의 말을 믿는다. 결국은 그럴것이다. 그렇게 힘들게 살지만 우리는, 그렇게 괴로움을 껴안고 살지만 우리는, 절망을 몸 어딘가에 받치고 살지만 우리는, 그래도 우리는,



우리는 무사할것이다. - <엄청나게 시끄럽고 믿을수없게 가까운>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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