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시험이 끝났다. 학사논문이니 그럴것도 없었지만, 그래도 혹시 몰라 조마조마하게 확인해 보니 논문도 통과했다. 이제는 실상 졸업만이 남은듯하다. 그래서 인지 모르겠지만 순간 나의 대학생활을 돌아보게 되었다. 학비가 비싸다고 분노하기도 했고, 대학교육의 무용성에 대해 한탄하기도 했었지만... 그래도 지나고 본 소감은 대학의 그 '무용성' 때문에 대학교육의 가치가 있는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졸업과 동시에 나는 학자금 대출의 빚을 끌어안고 세상에 나온다. 직장을 얻음과 동시에 빚을 상환하기 시작하며, 88만원세대라는 이름을 실감하게 될 것이다. 그렇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내가 받은 대학교육이 유용했음을 인정하고 싶다. 혹자는 취업을 보장해주지도 않는 학위가 무슨 소용이냐, 라고 외치겠지만(실제로 나도 그 생각을 종종, 아니 꽤 자주 해왔었지만) 세상의 모든 유용성을 물질적인 부분에만 관련짓는것은 어리석은 생각의 오류가 아닐까.
오늘, 우울한 20대라는 기사가 쏟아져 나오는 가운데,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직장에 들어가 지금은 꽤 괜찮은 연봉을 받아 생활하고 있다는 사람의 댓글을 읽었다. 그는 대학에 진학한 친구들이 모두 자신을 부러워한다며 대학에 가지않고 바로 사회에 뛰어든 스스로를 자랑스러워했다. 나도 물론 그의 선택을 존중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돈도 안되고 빚만 남겨준 시간들속에 쌓아온 '보이지 않는' 가치에 더 높은 점수를 주고 싶다.
대학을 다님으로써, 나는 고등학교때까지는 생각지도 못한 다양한 분야의 지식을 만났고, 존경할만한 스승을 두었으며, 대학에서가 아니라면 접해볼 수 없을거라고 생각하는 고급문화들을 향유할 수 있었다. 물질적 댓가를 톡톡히 치뤘지만, 그래도 대체 그 무용하고 쓸모없지만 인생을 풍요롭게 만드는 보이지 않는 가치들을 대학이 아니라면 어디서 만날 수 있었을까.
대학을 다니지 않았더라면 나는 서양미술에 관심을 가지지 않았을것이고, 막스베버의 책을 허벅지를 꼬집어가면 읽을일도 없었을것이며, 치누아 아체베의 책을 원서로 읽을것을 엄두도 내지 못했을것이다. 가슴을 찌르는 문장을 부여잡고 행복해할줄도 몰랐을것이며, 스스로의 지식을 정립해서 남 앞의 발표하는 짜릿함을 느끼지도 못했을것이다. 밤을 새며 아이디어를 도출해내고, 영화 한편을 보고 6장분량의 비평문을 작성해내는 글쓰기 능력 역시 배양하지 못했을것이다.
이것들이 꼭 대학을 나와야만 할 수 있는것이 아니라는것은 안다. 하지만 나의 경우라면, 대학의 울타리 밖에서 스스로 공부하고 아무도 시키지 않는데 스스로를 쥐어짜고 한계와 맞서 뛰어넘고 하는것을 잘 했을것 같지는 않다. 물질적인 부분에서는 하등 도움이되지 않을 독서와 글쓰기, 토론과 발표능력등을 나는 대학을 통해 배운것이다. 무용하지만 유용한것들, 무용하기에 더욱 유용한것들...
대학교육은 분명 비싸고, 그렇기에 반드시 사회적으로 개선되어야 할 문제이지만... 이것을 빌미로 '대학은 취업에 도움도 되지 않으니 가지 마라' 라고 말하는것은 멍청하고 단세포적인 사고방식이라고 생각한다. 문제는 물질적 가치와 정신적 가치를 비교하여 스스로 선택할 기회를 주고, 그 선택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주는 사회풍토가 필요한것이 아닐까. 대학에 가는 사람도, 대학을 가지 않는 사람도 모두 스스로의 선택에 만족할 수 있는 사회구조 말이다.
나는 대학에 다니면서 높은 비용을 뛰어넘는 가치를 얻어냈다고 생각한다. 빚으로 묵직한 현실의 땅위에 서 있지만, 그래도 웃으며 머리위의 하늘을 바라볼 수 있는 이유다. 이제, 대한민국에서 가장 무용한 곳 중 하나인 대학을 떠난다. 내 뒤를 이어 오는 젊은 청춘들은 좀 더 가벼운 현실을 딛고 이상을 바라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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