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월은 광주다. 그래서 늘 아픔이었다. 믿을 수 없었던 기억의 참상들과, 아직도 해결되지 않은 응어리가 맺힌 곳.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월의 광주는 빛난다. 잔인했던 사람들만큼이나 잊을 수 없는 함께 손 내밀고 보듬어주던 사람들에 대한 기억 때문이다. 온통 총소리로 시끄럽고, 이곳 저곳이 아비규환으로 넘쳐났지만, 광주는 그 때 잊을 수 없는 또 하나의 기적을 만들어냈다.
나에게 광주는 낯설지 않다. 오래전에 황석영의 <오래된 정원>으로 한 번, 드라마 <제 5 공화국>으로 또 한번, 영화 <화려한 휴가>로 다시 한 번, 강풀의 <26년>으로 그렇게 만나고 또 만나왔다. 그 뿐인가. 직접 광주를 찾은적도 있다. 국립묘지에 갔고, 그들의 사연을 들었고, 그럴때마다 울고 또 울었다. 그런데 이번에 영화 <오월애>를 통해 만난 광주는 좀 특별했다. 여전히 아프지만 왠지 모를 따뜻한 감정이 들었다. 오월의 광주가 아닌, 그럼에도 불구하고 따뜻했을 광주의 봄 이야기였다.
그때는 그랬다. 도둑도 강도도 그때는 마치 동시에 휴업을 선언한것처럼 잠잠해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 정신없는 난리통에도 누구하나 그 틈을 노려 자신의 이익을 취하려 하지 않았다. 어른들은 길 거리를 지나가는 청년들을 불러세워서 밥 먹었냐? 하고 걱정스레 물었고, 담배를 건네면서도 많이 피진 마라고 토닥여 주었다. 모두가 너나 없이 서로를 돕겠다고 줄지어 헌혈을 했고, 고등학생들이 먼저 앞서서 앞치마를 둘렀다. 그런 시절이었다. 광주의 봄은 그랬다.
사람들이 이야기한다. 광주의 피비린내나던 급박한 시절들을. 그리고 또 이야기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광주가 주었던 다시는 경험하지 못할 그 때 그 사람들의 끈끈했던 정과 마음들을. 생각하는것조차 끔찍한 기억이지만, 내 손을 잡아주었던 동료들과 서로의 아픔에 가슴아파하던 이웃들과 지켜주지 못해서 미안해했던 그 모든 시민들을. 그들이 있기에, 광주는 역사임과 동시에 그렇게 지금도 여전히 살아숨쉬고 있는 현실이었다.
다시 한번, 마음속에 광주를 품는다. 건드리면 우르르 무너져 내릴것같은 상처투성이의 그 기억들. 쑤시고 쑤시면 덤덤해질까 싶다가도, 여전히 아파서 묻어두고 끙끙 앓기만 해야했던 시간들. 하지만 이제 광주의 그 따뜻했던 봄을 기억하려 한다. 슬픔은 오래갔지만, 사람들은 견디며 그렇게 일상을 살아왔다. 시장에서 과일을 파는 할머니, 중국요리집을 운영하는 부부, 여행사를 하시는 아저씨. 군사정권은 그들에게 불의를 휘둘렀지만, 결코 그들에게 불행을 가져오지는 못했다.
오월은 광주다. 이들이 있는 한, 역사 속 그들을 내가 기억하는한, 오월은 여전히 광주일것이다. 따뜻한 봄날, 무엇보다 따뜻했던 사람들의 애정과 격려로 더욱 더 눈부셨을 그 곳. 잊지 않겠다는 단호한 다짐과, 애잔함과 감사함을 담은 인사를 실어 그 때 그 사람들에게 인사를 건넨다. 안녕하세요. 고맙습니다. 미안합니다. 그리고... 기억하겠습니다.
'시네마 천국' 카테고리의 다른 글
어쩔 수 없어, 그게 나의 본성이야. <크라잉게임> (2) | 2011.08.04 |
---|---|
정의란 무엇인가, <인 어 베러월드 In a better world> (4) | 2011.07.10 |
로맨스여 영원하라,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 (2) | 2011.04.29 |
영화 <과부춤>, 방향성을 상실한 기독교 (2) | 2011.04.14 |
고전의 가치, <대부The GodFather> (2) | 2011.04.0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