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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네마 천국

유쾌한 청년들을 보라, <네이키드 보이즈 싱잉>

by 김핸디 2010. 9. 21.
  

  지난 주에 연극 수업을 듣는데, 잠깐 노출에 관한 이야기가 나왔다. 박쌤의 논지란 이런거였다. '노출은 자기 스스로가 즐길 수 있을때만 아름다운것이다'라고. 이를테면, 지하철에서 치마뒤를 무언가로 가리거나, 별로 파이지도 않은 가슴께를 손으로 연실 가려대는 일부 여성들의 태도를 박쌤은 못마땅해했다. 이유인즉슨 여성들은 자신의 그런 행동을 '조신함' 의 상징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으나, 그 가림은 이미 자신의 노출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이고, 그렇기에 보는 이들에게 오히려 민망함과 부담을 안겨주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에 반면, 재미교포 출신애들이 인천공항에 방학되면 탱크탑만 입고도 활보하는 모습을 볼 수 있는데, 정작 그들은 노출을 너무도 당당하게 즐기기에 몸매가 아름답지 않아도 그 태도 자체로 매료된다는 말을 덧붙였다. 박쌤은 남자고 나는 여자라, 뭐 그의 의견에 100% 동의한것은 아니었지만, 적어도.. 노출을 하는 사람이 당당하다면 보는 사람의 민망함이 오히려 덜하다는것은 맞는말인듯 했다. 그리고, 박쌤이 잠깐 언급했던 뮤지컬 <네이키드 보이즈 싱잉>을 보면서, 나는 그것을 확신할 수 있었다.

  극이 시작하면 남자들이 하나둘 무대위로 오른다. 그들은..파격적이게도, 모두 벗은채다. 영화 <풀몬티> 정도를 생각했다면 그것은 번지수를 잘못 짚은 것이다. 이들은 하물며 가리지도 않는다. 처음부터 홀딱 다 벗고 정면으로 등장한다. 순간, 나는 잠시 충격과 공포에 빠져야만 했다. 으..으헉..헉..크헉..단발마의 괴성만 틀어막은 입속에서 삐져나올 뿐이었다-_-; 게다가 더 골때리는것은, 이 청년들의 노출이 극이 끝날때까지 내내 이어진다는 사실이었다. 하지만, 다행히도(?) 그들의 노출에 노출될수록, 나는 점점 처음의 흥분을 떨쳐버리고 '이야기'에 집중할 수 있었다.

  신기했다. 그렇게 다 벗고 나오는데도, 게다가 배우들이 하나같이 다 잘생기고 노래도 잘하는(감사할따름이다;) 멋쟁이들임에도 불구하고, 여타 다른 루트로(?) 누군가의 벗은몸을 봤을때의 그 민망함과 동시에 수반되는 찌릿찌릿함이 이 뮤지컬에서는 거의 느껴지지 않는다는것이. 이들의 벗은 몸은, 성적 대상이나 관조의 대상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삶의 방식이었고, 생활이었으며, 하나의 표현 수단이었다. 그래서 거의 두시간여의 시간동안 수많은 남성들의 몸을, 그것도 벗은몸을 쳐다보는 내 시선은 점차 무던함을 되찾아갈 수 있었다.

  배우들에게 조금의 망설임이나 민망함, 혹은 주저함따위는 찾아 볼 수 없었다. 그들은 자신의 노출에 당당했고, 그래서 무대 아래있는 관객들도 나도 즐거워졌다. 누드로 일하는 청소부, 남성에게 주어진 고통이자 축복인 할례, 자신의 욕망을 숨길수 밖에 없는 게이, 막 뜨기 시작한 포르노 스타등.. 각각의 주제에 맞춘 그들의 신나는 노래와 율동에 어깨가 들썩여졌고, 경쾌한 움직임과 가사에 웃음보가 터졌다. 아, 상상이나 했겠는가. 청년들의 벗은 몸을 앞에두고 영상 속 할아버지도 할머니도 아저씨도 아줌마도 그리고 영상 밖 아가씨인 나마저도 깔깔거리며 유쾌함을 느끼게 될 줄을!

  자기도, 그걸 지켜보는 타인도 노출의 이유를 납득하기 힘들때 그 노출은 불쾌함이 되고 공기를 무겁게 한다. 하지만 벗은자나 지켜보는 자 모두 그것이 어떠한 맥락속에서 받아들여질때, 그 노출은 유쾌함이 되고 속박을 제거하는 자유가 된다는것을 알았다. 네이키드 보이즈 싱잉! 그들이 내게 보여준 한편의 쇼는, 보이는것을 벗어버릴때 보이지 않는 것을 입을 수 있다는 특별한 경험을 느끼게 해주었다. 옷을 벗고 음악을 입은 그들, 한 없는 찬사를 담아 그들에게 아낌없는 박수를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