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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네마 천국

텍스트의 전복, <방자전>

by 김핸디 2010. 9. 21.



  텍스트는 쓰여진다. 그것을 쓰는것은 작가다. 물론, 작품은 독자에 의해 다양하게 해석 될 수 있다. 하지만, 전적으로 텍스트를 구성하는것은 작가고, 작가가 쓰고난뒤의 텍스트는 변하지 않는다. 독자가 아무리 이러쿵 저러쿵 해석의 나래를 펼쳐봤자, 주인공과 그들의 관계는 고정적인 것이다. 그러나 이 영화의 감독인 김대우는 '쓰여진' 텍스트를 뒤집어 엎는 과감함을 펼쳐보였다. 이 영화의 가장 큰 장점이자 특징이 바로 이것이다. 이 작품은 쓰여진 춘향전을 해석하지 않았다. 그냥 전복시키고 새로운 텍스트를 완성했다. 그래서 영화는 '쾌걸 춘향' 이나 '新 춘향전' 같은 원전에 기댄 제목을 빌리지 않는다. 재구성을 넘어선 스토리텔링. 말 그대로, <방자전>의 '탄생'이다.   

  우리는 늘 주인공에 주목한다. 하지만, 한 사람 한 사람 인생에선 그 한 사람 한 사람 모두가 주인공이다. 돈키호테에서 산초가 조연이라고 해서 그의 인생이 돈키호테만큼 다채롭지 않다고 누가 함부로 단언할 수 있겠는가. 그래서 이 영화는 매력적이다. 방자의 인생에선, 그래 방자가 주인공일 수 밖에 없는거다. 수백년동안 똑같은 앵글로 카메라를 돌리다가, 어느 날 카메라를 옆으로 좀 더 많이 돌렸더니 거기서 주인공 못지 않은 이야기가 뻥뻥 터져나온다. 아, 그렇구나. 좀 더 고개를 돌려보니 <향단전> 이라고 왜없겠으며, <마노인전>이라고 왜 없겠냐 싶다. 모두가 이야기의 중심에 설 수 있다는 발상, 이 영화가 가장 빛나는 부분이었다.  

  하지만, 문제는 이 영화의 장점이 바로 그 '텍스트의 전복' 달랑 요거 하나라는거다. 발상은 좋았는데, 풀어내는 이야기 솜씨가 영 부족하다. <방자전>이 <춘향전>에 밀려(물론 영화를 토대로 <방자전>이 실제 있다치고하는 가정이다) 알려지지 않았다가 이제야 드러났다. 만약, 그게 진짜 <춘향전>보다 더 재밌고 감칠맛나고 영롱하게 빛나면 '와..' 하고 감동이 몰려오면서 상상으로 빚었든 어쨌든간에 <방자전>에 열광하게 됐을것 같다. 근데, 보고나서 '뭐야~저러니까 <춘향전>에 밀렸지' 하는 생각이 드니, '에이~ 그냥 <방자전>은 넣어둬' 하는 기분이 드는것이다.

  게다가 섹슈얼하지 않은 노출씬은 진짜 에러였다. 방자랑 춘향이가 뭔가 좀 더 애절하게 서로의 사랑을 확인했으면 좋겠는데, 그랬으면 마지막 장면이 더 찡하게 와 닿았을 텐데, 뭐랄까 그들에게는 그런 설명할 수 없는 남녀간의 스파크가 없었던거다. 방자가 마지막에 '사랑한다' 라고 고백하지 않았으면 '쟤네 저거 사랑하는거야 뭐야' 라고 헷갈렸을 정도랄까.(아니, 방자놈은 한양에 어떻게 그렇게 쉽게 따라간다말하고, 춘향이 고건 이몽룡 오니까 어쩜 그렇게 들뜰 수가 있는거냐고!) 그래놓고 마무리는 뭔가 아가페적인 사랑으로 끝내버리다니.. 하아, 이 어찌 황당하지 않을 쏜가.

  물론, 김대우가 이야기꾼이라는것을 부인하고 싶지는 않다. <음란서생>은 그럭저럭 재밌게 본 편이었고, <방자전>도 불평하긴 했지만 볼만한 이야깃거리이긴 했다. 하지만, <방자전>같이 기존의 텍스트를 뒤엎고 새로운 이야기를 쓸거라면, 분명 기존의 텍스트보다 뛰어나야 그 가치가 있는것이다. 그런점에서 <방자전>은 기준 미달이었고, 나의 불평은 모두 이에서 비롯될 수 밖에 없었다. 모든 가려진 이야기는 드러난 이야기보다 풍부하고 재미있을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 <대장금>이 그랬고, <왕의 남자>가 그랬다. 그러나, <방자전>은 그런점에서 실패했다. 기대했던 관객으로선 아쉬운 일이 아닐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