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하다. 책을 읽으며 느낀 감정이었다. 서거 이후 한 없는 그리움으로, 혹은 가슴이 미어지는 아픔으로, 언제나 기억속에 좋게만 그려지던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는 잘못했다 말했다. 불찰이었다 고백한다. 실패했다고 인정하며, 댓가였다고 성찰했다. 누구에 대한 원망도 없고, 자신을 위한 포장도 없다. 그는 말했다. 그저 운명이었다고. 그러니 너무 슬퍼하지 말라고.
이 책은 인간 노무현의 출생부터 서거까지의 전 과정을 아우르는 말 그대로의 자서전이다. 정치인 노무현과 대통령 노무현의 틀에서 벗어나 인간 노무현을 비추어낸다. 그는 고집이 셌고, 자존심이 강했으며, 강단이 있었고, 뜨거운 심장을 가진 사람이었다. 그러나 가난한 고학생이었던 순간이든, 사법고시에 합격해 변호사로 지내던 순간이든, 대통령이 되어 최고 국가원수로 지냈던 순간이든, 늘 한결같이 성찰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 자신의 삶을 끊임없이 반추해보며 자신에게는 부끄러움을 주변 사람들에게는 고마움을 느낄 줄 아는 그런 사람이었다.
문재인은 책의 말 머리에서 이 책이 '따뜻하고 정겨운 작별 인사' 가 되기를 바란다고 했다. 그리고 그의 죽음에 혼자 눈물 흘려야만 했던 수 많은 사람들이 위로를 받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래서 였을까, 나는 책을 읽는 내내 슬픔의 자리에 들어 선 따스한 어루만짐을 느낄 수 있었다. 비록 그는 이곳에 없지만, 그의 인생을 오롯이 되짚어보는 과정에서 나는 허한 가슴을 달래주는 노무현의 인생, 인간 노무현을 다시 만날 수 있어 행복했다.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지만, 지나고 보면 예쁜 추억으로 채색되기도 한다지만, 그때는 너무 서럽고 괴로워 수없이 눈물을 쏟았다. 공부에 집중할 수가 없었다. 졸업을 앞두고 있던 초겨울 어느 날, 아무 데도 갈 곳이 없었다. 학교 교실에서 두 밤을 혼자 지냈다. 밤새껏 이를 악물고 떨면서 추위를 견뎠다. 다음날 이가 아파 밥을 한 숟갈도 먹지 못했다. 농협 입사시험에 떨어졌다. (p54)
2년 동안 커피 한 잔 값 들이는 일 없이 맨입으로 연애를 했다. 밤이 이슥하도록 화포천 둑길을 함께 걸었다. 밤하늘에 쏟아질 듯 은하수가 흐르는 여름날, 벼 이삭에 매달린 이슬에 달빛이 떨어지면 들판 가득 은구슬을 뿌린 것 같았다. 우리는 그 사이 논길을 따라 걷곤 했다. (p61)
책 속에서 만난 그는 생생하게 살아있었다. 젊었을때 고생담을 읽으면서, 나는 20대라는 지난한 고통의 시간을 견디며 사는것이 나의 짐만이 아님을 느끼며 위로받았다. 세상이 당장 무너질것처럼 보여도 세월은 흐르고 인생은 멈추지 않는다는 진리를 새삼스레 확인할 수 있었다. 연애담을 읽으면서는, 인생의 가장 행복한 순간들은 어떤 대단한 성취가 만드는것이 아니라, 저렇게 잊을 수 없는 사소한 풍경이 가슴에 별처럼 총총 박히는 순간이 만든다는것을 명심했다.
인간 노무현. 그는 아무것도 없이 홀로 정상까지 올라 아무것도 없이 정상에서 홀로 내려왔다. 가진것 하나 없는 가난한 집 고학생이었지만, 꿈이 있었고, 그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했고, 그 꿈을 함께 꾸며 행복해 했던 수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그는 떠났지만, 울분이 터지도록 억울하게 떠나갔지만, 어떠한 사실도 인간 노무현이 세상에 존재했고 그가 남겼던 수 많은 인생의 발자취를 거둘수는 없을 것이다.
책을 덮으며 천상병 시인의 <귀천>이라는 시가 떠올랐다. 그의 삶은 치열했고, 정직했고, 그래서 아름다웠다. 태양이 솟을 구름이 손짓할 때, 새벽빛 와 닿으면 스러지는 이슬을 더불어 잡고, 그는 세상 소풍을 마쳤다. 그가 없는 소풍은 그만큼 쓸쓸하고 다시 보지 못할 서운함에 가슴저리게 될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곳에서도 그가 넉넉한 웃음으로 세상 소풍을 담담하게 이야기하고 있을것이라고 믿는다. 그는 가서 말할것이다. 아름다웠노라고, 그래도 세상은 아름다운곳이었노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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