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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실의시대

그립다 말을 하려 하니 그리워, <노무현 상식, 혹은 희망>

by 김핸디 2010. 9. 22.


노무현 상식, 혹은 희망 - 10점
노무현 외 지음/행복한책읽기

 책 표지에 있는 노무현 대통령의 사진이 유난히 젊다. 그래, 대통령이 되기 전에 그는 참 '젊은' 사람이었다. 그의 트레이드 마크라고 할 수 있는 이마의 일자 주름은 대통령을 하면서 더욱 깊어보였고, 그래서 어느새 참 많이 늙어있다 싶었다.

 이미 서거하신후에 내가 이렇게 그의 생각들과 뜻을 정리한들 무슨 소용이 있나, 하는 생각이 들지 않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가 걸어왔던 길. 그가 꿈꾸고자 했던 이상이 단지 '그의 것' 만이 아니었다면, 우리는 모두 다시 '바보 노무현' 이 되어야 하는건 아닐까, 하고 생각한다. 

 " 내가 왼쪽으로 나왔으면 그건... 한국 사회의 기준이 너무 오른쪽으로 가 있기 때문입니다. 세계적인 기준으로 평가하면 별로 왼쪽이 아닌데, 한국사회가 너무 오른쪽으로 가 있으니까 그렇게 보이는 겁니다."
- 유시민과의 대선후보시절 인터뷰 中 (p42)

  아직도 수많은 사람들이 자기는 중도성향이라 얘기하며 좌도 있고 우도 있어야 균형이 맞는것이 아니냐고 말한다. 그러나, 정말 '균형' 을 찾고 싶거든 힘이 약해서 치우쳐져 있는곳으로 가면 될 일이다. 이미 오른쪽으로 많이 기운 대한민국사회의 정 가운데서서 자신은 '균형' 을 찾는것 뿐이라고 이야기하는 사람들의 주장은, 그래서 허울좋은 핑계로밖에는 들리지 않는다.
노무현 대통령은 결코 '진보주의자' 가 아니었다. 그가 심지어 '좌빨' 로 몰렸기 까지 했던것은, 그의 정치성향보다는 한국사회의 보수화 탓이 아니었을까.

 이런 상황을 가정해 보자. 상대방의 머리에 총을 겨누고 있는 두 사람이 있다. 여차하면 두 사람이 모두 죽을 수 있는 팽팽한 긴장상태다. 서로 총을 내려놓자고 말을 해보지만 상대방을 믿을 수가 없다. 나는 내렸는데 상대방이 나를 쏠 것 같은 두려움 때문이다. '나는 믿을 수 있는데 네가 문제' 라는 것이다. 이럴 때 상대방을 신뢰하고 먼저 총을 내릴 수 있는 사람의 배짱은 범인들의 상상을 뛰어넘는다. 노무현이 바로 그런 배짱을 가진 사람이다. - 정혜신, '바보vs배짱좋은남자' 中 (p94)

 노무현 대통령을 수식하는 표현중에 가장 널리 쓰이는 표현은 '바보' 혹은 '무모한 도전자' 라는 말이 아닐까 싶다. 하지만, 정혜신은 이 글에서 노무현 대통령은 '무모한' 게 아니라 '대담한' 것이라고 말한다. 승산 없는 게임에 무조건 달려드는게 '무모한' 사람이라면, 가능성은 적지만 그래도 도전할 만한 가치가 있는 일을 시도할 줄 아는 것은 '대담한' 사람이라는 것이다. 그는 단 한번도 '실패' 를 예상하지 않았다. 수 많은 실패를 겪었지만, 언제나 도전할 때는 상식과 진정성이 가져올 승리를 꿈꿨다. 합리적인 결정이었기에 실패해도 도전 그 자체로 의의를 두었고, 그것은 정치인 노무현이 풍파속에서도 꿋꿋이 걸어올 수 있는 원동력이 되었다.

 기자 : 지역구에서도 당선되지 못한 사람이 과연 대통령이 될 수 있겠냐는 말이 많던데요.
 노무현 : 그렇게 얘기할 수 있습니까? (지역구 탈락자) 누구도 도전 안 했을 뿐이죠. 부산에서의 패배는 우리 대통령도, 아니 링컨 대통령이 다시 태어나도 어려운 선거였습니다. 도전은 도전으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결과와 상관없이 '도전만으로 가치있는 도전'. 그것이 승부사 노무현이 신념을 지켜 온 방식이었다.

 노무현은 '우리 아이들에게 남기고 싶은 것?' 이라는 글에서 유니세프 후원금 영수증을 남기고 싶다고 말한다. '가보' 로 삼아야겠다는 생각이 들기까지 했단다. 이유는 두 가지다. '늘 주위를 둘러보고 타인을 위해 봉사하라는 의미' 의 측면이 하나 있고, 한편으로는 '아빠는 이렇게 산단다' 라는 자랑이 섞여 있어서다. (p100)

 이 구절을 읽고는 가슴이 먹먹해졌다. 노무현 대통령은 분명 '남들 모르게 자선을 실천하는 천사표' 는 아니었다. 하지만, 그는 자녀들에게 무엇을 물려줘야 하는지, 무엇이 자랑할 만한 삶인지 알고 있었던 사람이었다. 운동을 하다가 감옥에 잡혀갔을 때, 면회 온 부인과 자녀들에게 '죄를 지은것은 아니니 너무 걱정하지 마라' 라고 담담히 말할 수 있었던것은 그가 지켜 온 삶에 대한 '당당함' 에서 비롯된 것이리라.

 "(내가 대통령이 될까봐) 왜 불안해하지요? 그것은 그들에게 어떤 위해가 있을 것 같아서는 아니겠지요. 아마 부당하게 더 가진 것을 내놓게 될지 몰라 그런지 모르겠습니다. 나는 부당하게 가진 것 말고는 내놓으라고 하지 않습니다. 나는 부당하게 행사되는권리, 남용되는 권력 외에는 시비를 해 본적이 있습니다. 우리 사회에 강자라는 사람들에게 '노무현을 미워할 자격이 있으려면, 불안하게 생각할 자격을 먼저 갖추라, 부당한 힘을 갖고 부당하게 행사하는 정도의 사람일 때 하라' 고 하겠습니다. 그 이외의 사람에게는 나는 적대 행위를 한 일이 없습니다. 앞으로도 안 할 것이고요." (p195)

 모두와의 평화를 모색하는것은 진짜 바보들이나 하는 짓이다. 홍세화도 말했듯이 똘레랑스는 앵똘레랑스에 대해서는 단호하게 대처해야 한다. 그게 진정한 화합이고, 공존의 시작이다. 부당한 권력을 지닌 사람들이 당연하게 그 부당함을 휘두를 때, 그리고 그것이 보기에 옳지 않을 때, 우리는 주저말고 싸워야 한다. 져도 좋으니까 싸워야 한다. 노무현 대통령은 고독했지만 끝까지 싸웠고, 결국엔 그걸 알아주는 사람들을 만나서 대통령이 되었다. 

 노무현 대통령의 서거. 국민장도 지났고, 곧 있으면 49재라 한다.
 이제 괜찮지, 싶을만도 하건만 어찌된 일인지 한 번씩 툭툭 가슴에 뭔가가 걸린다. 이제와서 어쩔 수 없다는것을 알면서도 많이 그립다. 그립다 말을 하려 하니 그립고, 그래서 그리움에 추억하니 또 그립다. 

 우리는 정말 그를 잃은 것일까. 우리는 계속 그렇게 앞으로 나아가며 살아가야 하건만, 자꾸만 떨어지지 않는 발 걸음 앞에서 앞을 내다 볼 자신이 없다. '들고있으면 팔 아프고, 내려놓으면 마음 아픈'.. 그게 지금의 솔직한 내 심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