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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실의시대

험한 세상 다리가 되어, <이희호 자서전 동행>

by 김핸디 2010. 9. 22.
이희호 자서전 동행 - 10점
이희호 지음/웅진지식하우스(웅진닷컴)


 삶이 곧 역사다. 김대중 대통령과 이희호 여사의 지난 삶을 되돌아 볼 수 있는 이 책을 읽노라니 쉬이 감동이 떠나질 않는다. 몇 번의 죽을고비. 정말 집요하고 잔인한 그 세월에 맞서, 정말 어렵고도 힘겹게도 두분은 험한 시대의 다리가 되셨다. 

 이희호여사는 이화여대와 서울대를 나온 엘리트였다. 미국 유학까지 다녀온 그녀는 여성운동을 하다가, 애 둘 딸린 홀애비 김대중대통령을 만났다. 두 사람은 처음부터 여느 연인들의 달콤한 연애와는 다른 만남을 가졌다. 사랑의 단꿈에 빠지기에는 민주화 인사인 김대중 대통령이 해야할 일이 너무도 많았으며, 이희호 여사 역시 사랑에만 매달리는 여성이 아니었다. 그렇게 하나가 된 두 사람은 부부였으면서, 친구였고, 조력자였고, 동지였다.

 김대중 대통령과 결혼한 후의 삶은 가시밭길 그 자체였다. 박정희 정권은 국민들의 지지를 얻는 김대중 대통령을 경계하여 끊임없이 제거하려고 애썼다. 감옥에 가두고, 의도적으로 교통사고를 내서 평생 다리를 절게 만들고, 일본에서 납치해서 수장시키려고까지 했다. 그에게 선거자금을 주는 기업인들까지 협박하면서 김대중 대통령의 정치생명을 끝내려고 했지만, 그 분은 타협하지 않았다. 그러기에는 독재를 끝내고 민주주의를 염원하는 사람들과 그들을 지지하는 세계의 양심세력의 목소리가 너무도 간절했기 때문이다.

 박정희가 죽은 뒤에도 그 분의 고난길은 멈추지 않았다. 짧았던 서울의 봄을 뒤로하고, 전두환이 군홧발로 대통령의 자리에 올랐다. 전두환은 정당성이 없는 대통령이었고, 그에 따라 폭력으로 권력을 유지하려고 했다. 그리고 국민들의 분노가 폭발하여 마침내 광주에서 민주화운동이 터졌다. 김대중 대통령과 광주시민의 민주화를 열망하는 마음을 한데 묶어 전두환은 '김대중 내란음모사건' 을 꾸며내 사법살인을 시도한다. 실로 억울하고, 가슴아픈 현대사의 한 장면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이번에도 국내외의 구명운동을 통해 김대중 대통령은 구사일생한다. 

 인동초라는 별명처럼, 수많은 고난과 시련을 견뎌 온 김대중 대통령. 그리고 그 옆에는 부드럽지만 강인한 정신으로 그의 옆에서 묵묵히 내조를 하는 이희호 여사가 있었다. 그녀는 남편이 감옥에 있을때는 남편을 생각하며 집에서도 불도 때지않고 지냈으며, 언제나 생명의 위협이 있었던 김대중 대통령을 위해 언제나 눈물뿌려 기도했다. 아무리 인동초인 김대중 대통령이래도, 이희호여사가 없었더라면 견디기 힘들었을것이다. 그만큼 김대중 대통령이 버텨온 삶은 너무도 잔인한 세월이었다.

 6.10 항쟁으로 직선제가 받아들여지고, 민주화세력은 김대중 대통령과 김영삼 대통령의 후보단일화를 열망했다. 그러나, 김대중대통령이 후에 후회했듯, 양김은 끝내 후보단일화를 이루어내지 못했다.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의 대선승부. 민주화세력은 양김의 분열로 직선제를 이루어내고도 다시 노태우에게 정권을 내 주고 말았다. 그리고 군사정권을 지내오며 민주화의 기수로 함께 해왔던 양김은 이 때부터 본격적으로 다른 길을 걷는다. 가장 드라마틱한 갈림길은 3당 합당. 김영삼 대통령은 난데없이 노태우와 손을 잡았고, 김대중 대통령은 홀로 반대편에 남았다. 그리고 주류가 아니라 소신을 지킨 그는, 97년 대통령에 당선되기까지 또 한번 고난의 시간을 보낸다.

 그리고 마침내 97년, 정계은퇴선언을 뒤집고 대통령선거에 출마하여 마침내 15대 대통령이 된다. 김종필과 손을 잡고, 정계은퇴선언을 번복하여 흠집을 남긴 절반뿐인 승리였지만, 최초로 수평적 정권교체를 이루었다는 점에서 그 의의는 무척이나 컸다. '준비된 대통령' 이었던 그는 IMF조기졸업, IT강국 기반마련, 여권신장, 남북정상회담 개최 등 굵직굵직한 업적을 남긴다. 비록, 정권말년에 터진 아들들의 스캔들이 큰 흠집으로 남았지만, 김대중 대통령은 '최선을 다한' 그래서 '부끄럽지 않은' 대통령이었다.

 한국 민주화의 아버지, 한국 최초의 노벨상 수상자, 한국보다 세계에서 더 인정받는 인동초 김대중 대통령의 파란만장한 삶이 이제 막을 내렸다. 그러나, 그가 사랑하고 존경했던 이희호 여사와 그가 평생을 걸쳐 섬겼던 국민들은 이 자리에 서서 그를 기억할 것이다. 숱한 박해에도 불구하고 정치보복 한 번 없었던 사람, 다방면에 걸친 방대한 독서로 시대를 앞서가는 생각을 했던 사람, 탁월한 지도자로서의 노무현 대통령이 정치천재라고 불렀던 사람, 부족한 점은 있었을지언정 혼신을 다해 민주화와 국민을 위해 삶을 살았던 사람. 

 그는 이제 이희호여사와의 동행을 끝냈지만, 수많은 사람들의 마음속에서 살아 다시 새로운 동행을 시작할 것이다. 험한 세상의 다리가 되어주셨던 김대중 대통령을 존경한다. 행동하는 양심이 되어 그 분과 동행할것을 약속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