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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의 독서

'그들' 이 되지 말고 '너 자신' 이 되어라, <존재와 시간>

by 김핸디 2010. 9. 22.


   책을 보면서 꼭 눈물이 날것만 같았다. 하이데거는 우리가 아니라고 부인하고 사는것에 정면으로 메스를 들이대는 철학자다. 니 인생이라고? 호오, 그래? 니가 선택한 길이라고? 정말? 그게 네 행복이라고? 과연 그럴까? 벗어나려고 벗어나려고 해봐도 결국엔 인정할 수밖에 없는 삶의 근원적인 이야기. 그 밑바닥부터 들춰내는 철학자가 바로 하이데거였다.

   하이데거에게 붙는 수식어는 늘 '난해함' 이다. 물론, 어느 철학자가 쉽게 다가오겠냐마는, 내 개인적인 심정으로 유독 헤겔이나 하이데거같은 ㅎ 자로 시작하는 철학자는 유난히 난해하게 다가오곤 했던것같다=_=. 하이데거의 경우에는 그 난해함의 상당수가 용어에서 비롯된다. 그는 독일 일상어를 가지고 자신의 철학을 풀이하고 있는데, 그렇기에 그 언어를 번역해서 받아들이는 우리로서는 그가 한 마디만 던져도 '이게 무슨 말이야' 하고 끙끙 앓을 수 밖에 없는것이다.(독어를 아는 진중권은, 그래서 하이데거는 별로 어렵지 않은 철학자라고 얄미운 언급을 하곤 했다;)

    일례로 하이데거는 인간을 '현존재' 라고 표현한다. 인간이면 인간이지 무슨 현존재냐, 라고 되묻는 순간 하이데거의 철학은 머리가 지끈지끈 아파오기 시작한다. 하지만, 다 이유가 있으니 현존재라고 불렀던것이 아니겠는가. 하이데거는 기존의 형이상학의 체계를 뒤엎은 사람이었다. 그래서 다시 근본부터 사고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용어가 필요했다. 

   인간과 사물은 모두 '거기에 있음' 이라고 표현할 수 있다는 점에서 같은 '존재자' 로서의 역할을 한다. 하지만 오직 인간만이 자신의 존재에 대해 성찰할 수 있다. 꽃과 연필과 발밑의 강아지는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하지' 라는 고민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인간은 보든 사물보다 '존재론 적 우위' 에 있으며, 하이데거는 이러한 인간을 '현존재' 로 칭했다.

    인간은 동시에 '세계-내-존재' 이기도 하다. 이 말은 인간이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모든것들과 '관계' 를 만들어간다는 의미다. 예를 들면, 우리가 옷을 살때 우리는 단순히 옷이라는 '존재자'를 만나는것이 아니라, 그 옷안에 내재되어 있는 '옷 파는 상인의 세계' '옷이 만들어진 작업장의 세계' '옷의 디자인을 고민한 디자이너의 세계' 를 모두 함께 만나는것이다. 하이데거는 인간이란 이렇게 공부를 하고 영화를 보고 간식거리를 먹으면서 그 모든 존재자들을 만드는 사람들과 사용하는 모든 타인을 함께 만나고 있다고 말한다.

    우리는 타인과 '함께 거기에 있음'으로 존재한다. 그리고 그것은 남과 다른 나만의 존재를 만들어가는것이 아니라, '남들과 다르게 사는것을 염려' 하게끔 한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자기도 모르게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면서 대중의 요구에 발맞추어 살게 된다. 슬프게도, 따라서 인간은 일상생활에서 '나 자신' 이 아니라 남들과 다르지 않은 '그들' 에 속하는 존재자가 된다. 그리고 그 안락한 '불특정 다수'는 나라는 존재에 대한 고민의 필요성을 느끼게끔 하지 않는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남들과 다른 '스스로의 삶' 을 개척하기를 두려워한다. 

    그는 '사람은 죽는다' 라는 명제를 기억하면서 죽음을 향해 앞서 달려가라고 권한다. 목숨을 끊으라는 얘기가 아니라, 자신에게 주어진 '한정된 시간' 을 깨닫고 시간을 충실히 살게끔 내면의 소리에 충실하라고 말하는 것이다. 평범한 우리들과 다르게 위인이라고 불리웠던 이들은 '불특정 다수' 에서 나와 스스로의 삶을 개척해나갈 수 있었던 이들이었다. 하이데거 역시 평생 '자신만의 길' 을 만들어온 사람이었다.

   하이데거는 모두가 당연하다고 여겨왔던 사고의 패러다임을 정면에서 반박하면서, 한쪽끝에는 출생이 있고 다른 끝에는 죽음이 있는 인간이 그 사이를 통과하면서 어떻게 '삶의 역사'를 만들어갈것인지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고 설파했다. 나는 '나' 인줄 알았는데, '내 자신' 이 아니라는 사실. 그리고 '나 자신' 이 되고싶다고 가고 있는길이 어쩌면 '그들' 속에 속하기 위한 몸부림이라는 사실. 머리를 찧으며 번뇌한다. 나에게는 '아무도 가지 않은' 그러나 '내가 만들어갈' 그 길을 걸어갈 용기가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