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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앞의 생

응답하라 2001, 핑클 팬질의 추억

by 김핸디 2012. 8. 30.




90년대 아이돌을 논하는 글을 보다가 나도 모르게 그만.... 이 사진을 보고야 말았다. 근데... 왠지 이 안에 나 있는것같다ㅋㅋㅋ 


중 3에서 고1 올라가는 시점에서 핑클팬이 되었다. 시작은 그러니까, 중 3 연합고사를 보고난뒤 시간이 펑펑 남아돌때였다. 그때 나는 핑클이 나온 쇼프로를 보게됐는데 거기서 이효리가 (예상치도 못하게) 너무 웃겨서 호감이 갔다. 심심한김에 핑클이나온 쇼프로그램을 마저 찾아보게 되었는데, 계속 보다보니 진짜 너무 웃긴거다. 그래서 무슨 개그맨 좋아하듯이 먼저 이효리를 좋아하게 되었다.



핑클팬이 되었던것은, 그러니까 계속 중 3때.. 겨울방학즈음에 친구랑 함께 코엑스에 놀러갔다가, 음악캠프(당시 MBC음악프로) 공개방송을 보게 되었던게 계기였다. 한참 인기가 많았던 GOD가 나와서 촛불하나를 부르길래 멍하니 손호영얼굴을 구경하고 있었는데, 이어서 나온 가수가 핑클이었다. Feel your love를 불렀는데, 처음 나왔을때는 팬들이 빨간풍선을 흔들면서 응원한답시고 악을 쓰는걸 보고 '쟤네 되게 웃긴다' 하는 생각 뿐이었다. 근데, 오마이갓. 이효리가 무대 앞으로 나오자, 그때 왜 그랬는지 모르겠는데, 나도 모르게 당시 친구가 입고있었던 빨간색 점퍼를 벗으라고 종용한뒤에 그걸 흔들면서 팬들처럼 소리를 지르기 시작한거다. 아아아악, 이효리다, 효리언니!



그렇게 실제로 핑클을 보고나서 나는 팬이 되었다. 그리고 팬질의 정석, 앨범 모으기를 시작했다. 당시 활동하던 3집 앨범을 시작으로 차근차근 그들의 앨범을 모으기 시작했다. 물론, 이렇게 내가 핑클의 팬이 되어간데에는 무척이나 뜬금없고 갑작스러운점이 많았다. 나 역시 당시의 여자애들처럼 핑클이라면 괜히 반감부터 가지는 또래 여자애들중에 하나였으니까 말이다. 아직도 기억나는게 99년인가 핑클이 대상을 받았었는데, 당시 PC통신 연예방에 "핑클이 대상이라니 말이되나요? 짜증나게" 라는 류의 글을 가장 먼저 올렸던게 나였다. 그만큼 내게, 핑클은 애초에 호감의 대상이 아니었다.



그렇다면 나는 어쩌다가 핑클팬이 되었나. 그건 3집 이후로 핑클이 그동안의 '여성스럽고 귀여운' 이미지를 벗고, '털털하고 망가지는' 모습을 많이 보여줬기 때문이었다. 실제로 3집 이후로 핑클의 여성팬들은 그 수가 팽창했고, 3.5집 활동을 하며 공방을 뛰었던 내가 보기에 핑클팬의 남녀비율은 1:1 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이기도 했다.



여튼, 그렇게 팬이 된 나는, 고 1을 거의 절정의 빠심으로 달렸다. 앨범내는 주기가 짧았던 핑클답게, 3집을 내고 들어간지 얼마 안되서 3.5집이 나왔고, 연합고사에서 해방되어 대학교 1학년의 마음으로 고등학교 1학년을 보냈던 나로서는, 원하는 고등학교에도 합격했겠다 마음놓고 팬질을 시작했던것이다. 팬사이트에 일단 둥지를 틀고, 그 사람들과 공방을 보러 다녔다.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만난. 같은 지역에 사는 한살 어린 핑클팬과 친해져서, 우리는 매번 분당에서 여의도까지 오가며 우정과 팬심을 다지기도 했다.



일요일엔 교회를 다녀서 못갔지만, 토요일에는 한창 팬심으로 거의 매주 MBC공방을 뛰었다. 3.5집은 과연 핑클 공방팬의 전성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 3.5집의 타이틀곡인 <당신은 모르실거야>는 그 우렁찬 응원함성으로 인해 음반으로 들으면 밋밋하기 그지없다는 의견들이 지배적일정도였다. 공방의 매력은 역시 핑클의 팬서비스. 팬들의 떼창으로 기분이 좋아진 핑클은 늘 공방팬을 의식하는 제스쳐를 취하며 인사를 해주곤 했었는데, 그거에 맛들이면 공방을 안가고는 배길수가 없었다. 



공방뿐만이 아니었다. 사인회에도 가고, 이효리 집에 찾아가기도 했다. 당시만해도 겁대가리가 없었던지라, 아파트 1층이었던 이효리 집 앞 계단에 앉아서 죽치기 일쑤였고, 이건 당시엔 초특급 대박이자 비밀이었지만... 지금은 밝힐 수 있는 에피소드를 하나 풀자면... 난 효리언니 어머니가 문 열어줘서 이효리네집 거실에서 효리언니 어머니가 주는 유자차도 마신적이 있다. 같이간 팬들과 (내 기억으로는 나 포함해서 3명) 이효리네집 거실에 앉아서 핑클이 나오는 TV를 보며 효리언니 어머님과 대화를 나두던 신비함이란. 게다가 그때 타이밍도 기막히게, 이효리가 집으로 전화해서 어쩌고저쩌고 어머님한테 하는 소리가 들려서 우리는 기절초풍의 직전까지 가야만 했다. 어머님이 '효리가 알면 싫어하니까 절대 집에 들어온거 알리면 안된다' 라며 신신당부를 하셨지만, 이제는 밝혀도 되겠지. 효리언니 어머님, 사랑합니다. 어머님의 따스한 배려덕에 저희가 더 이효리 이효리 외치고 다녔어요. 핑클의 리더 이효리 쨔응.



여튼, 그렇게 팬질의 나날을 보냈노라니 기억나는 일들이 참 많다. 팬사인회 갔다가 '이효리!' 하고 외쳤는데, 이효리가 사인하다말고 계속 쳐다보면서 손 흔들어줘서 좋아서 날뛰었던거, 늘 지금처럼 할때 흰 반바지 입고 공방갔는데 비가 많이와서 다 젖는바람에 초 난감했던거, 겨울에 있었던 시상식 갈려고 담임선생님하고 담판짓고 야자빼먹었던거, 친구들 생일엔 전부 핑클CD 돌렸던거, 이효리가 입고 나온 사복(팀버랜드 벙거지랑 디키즈 오버롤즈!) 살려고 맨날 용돈 모았던거, 이진네집에 얼굴보러 갔었는데, 이진 나오는데도 몰라봤던거 ㅋㅋㅋ



개인활동을 선언하며 4집활동을 마무리할때까지 핑클은 내 10대 시절에 가장 열광했던 아이돌이었다. 이효리팬으로 시작했지만, 뼛속까지 핑클팬이 되었던 때문인지, 내가 좋아했던 이효리는 '털털하고 재미있는 이효리' 였기 때문인지, 솔로로 활동하고 이효리가 텐미닛으로 뻥 떠 버리자 왠지 마음이 확 접혀버렸던 나였다. 물론, 다른 멤버들에 대한 관심도 마찬가지였다. 핑클이 아닌 이효리는 내게 별로였고, 네명이 아닌 각자의 핑클은 나에게 별로 의미가 없었다.


그리고 세월이 흘렀다. 거의 10여년의 시간인데, 어쩐일인지 요즘 다시 핑클이 그립고 생각난다. 이제는 너무 익숙해져서인지, 개인으로 활동하고 있는 그들 각자에게 관심이 가고 다시금 호감이 가고 그런다. 물론, 옛날같은 팬심으로 돌아가기는 힘들것 같다. 그렇지만 지금도 TV에 나오면 반갑고, 얼굴보면 기분 좋아지고 한다. 10대의 추억을 함께 해준 핑클, 나의 워너비였던 그녀들이 고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