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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 - ![]() 공지영 외 지음, 김용민 사회/한겨레출판 |
학교 도서관이 왠일이지. 혹시나.. 하고 검색해 본 이 책이 당당히 서가에 꽂혀있어서 놀랬다. 그리고 잽싸게 남들이 빌려갈세라 달려가서 대출완료! 11월 15일이 출간일이던데, 벌써 도서관에 나왔을줄이야. 학교 사서님들에게 간만에 경의를 표하는 바이다.
어제 서점에서 반을 읽었지만, 계속 머리속을 떠나지 않아 결국 이렇게 반을 다 읽고야 말았다. 반도 좋았지만, 나머지 반은 또 어찌나 좋던지. 버스에서 앉아 이걸 읽으면서 결국 폭풍눈물을 쏟고 말았다. 강연자들도 강연자들이지만, 질문하는 분들도 어찌나 멋지신 분들인지. 읽는 내내 감탄연발, 감동쓰나미, 반성및인생성찰 일만톤. 그리고, 읽고나서는...백만번의 강추!
한겨레 강연시리즈야 언제나 좋았지만, 이번 책은 유독 더 좋았던것 같다. 내가 '1등만 기억하는 더러운세상' 을 몸소 체험하며 살아가고 있는 요즘이래설까. 이래저래 내 가슴을 뛰게한 책이 아닐 수 없었다. 아, 맞아... 난 이렇게 살아서는 안돼. 이 길은 사람답게 사는길이 아니야-
먼저, 노회찬은 '로또밖에 방법없다' 를 외치는 사회에 대해 이야기한다. 계층이동이 불가능하고, 사회보장이 불안한 사회. 그래서 사람들은 로또에 올인하고, 그 미미한 확률에 인생을 건다. 하지만, 정말 로또밖에는 우리 삶에 대안이 없는가. 그는 승자가 모든것을 독식하는 '동물의 왕국'에서 벗어나 '인간의 왕국'으로 우리를 이끌고자한다.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삶. 그래서 그는 '로또밖에 방법없다' 라는 현수막이 '진보정당 외에 방법 없다' 라는 현수막으로 바뀔날을 기대한다고 했다. 진보가 밥 먹여주고, 나의 문제를 고민해준다는 믿음. 나는 정말로 노회찬이 무척이나 믿음직스러워 좋아졌다. "나쁜 영화는 인류의 미래를 걱정하고, 좋은 영화는 나의 내일을 걱정한다" 라던 영화감독 차이밍량의 말을 빌리자면, 나에게는 역시 "나의 내일을 걱정해주는" 정치인이 좋은 정치인일테니까 말이다.
앤디 비클바움과 마쓰모토 하지메는 '즐겁게 저항하는 법' 에 대해 설파한다. 그들의 핵심메시지는 '나 이거 싫거든? 장난아니고, 진짜 불만이거든!' 하고 자신의 목소리를 내자는 것이다. 어떻게? 재미있고 기발하게. 그래서 그들은 기업의 대변인을 사칭하고, 길거리에서 술판을 벌이며, 바쁘고 경쟁하는 사회를 비웃는다. 한가함을 자책하지 말고, 오히려 한가함을 창조의 시간으로 이용할 줄 아는 자유. 마쓰모토 하지메의 다음과 같은 말은 곱씹을수록 좋았다.
" 지금까지 저는 한가한 것, 쓸모없어진 것, 도대체 뭘 하고 있는 건지 모를 존재들이 모여서 하는 일을 설명했습니다. 저는 이들이 함께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부자들은 기본적으로 바쁜 존재들입니다. 하지만 저희 같은 가난뱅이들은 아주 한가합니다. 바쁜 사람이 이기겠습니까. 한가한 사람이 이기겠습니까? 저는 한가한 사람이 무언가를 만들어낼 수 있고, 또 절대적으로 이기게 되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므로 이 싸움은 한가한 우리들이 이길 수 밖에 없는, 그렇게 이미 결정된 싸움이라고 생각합니다. 싸울 수밖에 없고요. 여러분, 여유 있고 한가한 사람끼리 잘해봅시다."
한편, 공지영은 소설가가 '대중성' 을 가질 수 밖에 없는 이유, 그리고 잘 보여야할 대상은 오직 대중뿐이기에 소설이 현실을 직시하고 진실을 말할 수 있는 수단이 된다는 얘기를 전해주었다. 지난번 그녀의 책에서도 읽은 내용이었지만, 혁명과 포르노의 공통점과 대척점을 설명해 준 부분은 정말이지 무척이나 인상 깊은 대목이었다.
마지막으로, 김규항. 아, 난 솔직히 이 부분은 건너뛰려고 했다. 예전 B급좌파 보고 열광한적 있었지만, 이 사람은 갈수록 뭔가 너무 날이서서 가까이하기엔 부담스럽다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진짜 뭐야, 이 사람이 이렇게 멋있는 사람이었나? 읽으면서 제일 감동 많이하고 줄 많이 친 강의였다. 스펙의 시대에 틀에서 매몰되지 않고, 벗어나서 진짜 삶을 즐길 수 있는 대안을 찾자라는 내용이었는데... 진짜 이렇게 진정성이 느껴지는 좌파는 처음이었다.
" 이명박은 우리 앞에 존재합니다. 그리고 실제로 우리를 괴롭고 힘들게 만들죠. 그렇지만 어느새 우리 안에도 이명박이 존재합니다. 우리가 괴물이기 때문에, 우리가 괴물의 속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이명박이라는 괴물이 만들어진것입니다. 이것은 제 말이 아닙니다. 지난 번 용산참사관련해서 문학인들이 만든 책 <지금 내리실 역은 용산참사역입니다> 에 있는 구절입니다."
그는 말한다. 이명박의 등장으로 사람들이 너무 쉽게 스스로를 진보이자 합리적인 인물로 포장하고 있다고. 이명박을 욕하면서 '적어도 나는...' 하면서 자기위안을 삼고 있다고. 하지만, 이명박대통령은 우리가 만들어낸 현상이고, 거부할 수 없는 우리의 모습이기도 하다. 우린 모두 부자가 되고 싶고, 비싼 옷과 집을 소유한 사람들을 부러워하고, 소유하지 못한것을 갈망하는 '어플루엔자'(부자병)에 걸려있다. 아니라고 할 수 있는가. 그게 우리의 모습이다.
어린이 잡지를 발행하면서 그가 보여주는 교육철학과 생각들은 정말이지 나에게 깊은 깨달음을 주기도 했다. '마음이야 그렇지 않지만 현실은..' 이라며 돌아서던 나에게 '당신의 생존확률은 2.5%'라는 현실직시를 주었고, '차마 용기가 안나서..' 라던 나에게 혼자라면 두렵지만 힘을 모은다면 함께 길을 만들어갈 수 있다는 격려를 주었다.
'1등만 기억하는 더러운세상!' 이라고 욕하고 있었지만, 사실은 내가 그 세상을 동조하고 있었다는 사실, 그리고 남들과 격차를 벌려야 행복한 그들에게 내가 살면서 웃을 수 있는길은 남과 더불어 삶으로써 얻을 수 있는 행복뿐이라는 진리, 많이가진것을 즐거워하던 삶에서 나누는것에 기쁨을 찾는 '전복된 즐거움'을 가진 삶을 사는것이 '1등만 기억하는 더러운세상' 에서 살아가는 유일한 방법이라는 깨달음이 내 마음을 뜨겁게 울리는 시간이었다.
" 여러분들, EBS 다큐 <지식e> 많이 보시죠? 제가 우연히 텔레비전을 틀었는데 그 프로그램에 제주도의 잠녀 할머니들이 나오시더군요. .... 그 중에서 제일 연세가 많아 보이는 80대 잠녀 할머니와 대화하는 내용이었습니다. "할머니, 잠수 장비 사용하시면 훨씬 편하지 않으십니까?" 그러니까 할머니가 "암, 편하지. 그거 하면 나 혼자서 100명 몫도 하지" 하십니다. "그런데 왜 사용하지 않으십니까? 힘들어 보이시는데..." 물으니까 "그거 사용하면 나는 좋은데 나머지 99명은 어떻게 살라고" 하셨습니다."
이 부분을 읽는데 진짜 말 그대로 폭풍감동. 와, 정말이지 이렇게 살아야지 싶었다. 이 제주도 잠녀 할머니처럼... 100명분을 독식하는것이 아니라, 그렇게 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99명과 더불어 삶을 위해 기꺼이 1명분에 만족하는 삶을.
책을 다 읽고나니, 이 5명의 멋쟁이들과 함께 1등부터 줄 세우는 이 무한경쟁의 사회에서 기꺼이 이탈해야겠다는 다짐이 들었다. 그래, 이건 제대로 된 기차가 아니야. 지금이라도 여기서 내려서 궤도를 수정해야지. 그리고, 나만의 '진짜 삶' 을 만들어가야지. 1등만기억하는더러운세상, 에서 치이고 이건 뭔가 아닌가싶어- 하며 장기하식 푸념을 내뱉는 모든이에게 권한다. 물론 나도 이제, 이 더러운세상에 가차없이 이별을 고하려한다. 굿바이, 동물의 왕국. 웰컴, 더불어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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