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영화사에 길이 남는 명작중의 명작이라는 <대부>를 봤다. 꽤 긴 러닝타임- 종종 부성애를 보여주는 장면에선 울컥하긴 했지만, 그래도 보고나서의 솔직한 심정은 '대부가 왜 이렇게 유명한 명작이지?' 라는 의구심이었다. 그러나, <대부>를 본 뒤 친구랑 얘기를 나누다가 문득, '이토록 오래된 영화가 이토록 친숙하기에 명작' 이라는 결론에 다다르게 되었다.
그러니까, 나는 <대부>를 처음봤지만 처음본것이 아니었기때문에 별 감흥을 느끼지 못했던것인데, 그것은 <대부> 이후의 수많은 느와르 영화에서 너무도 많이 <대부>가 지니고 있는 많은 요소들을 차용해왔기 때문이었다. 즉, 대중의 입맛에 맞고 훨씬 친숙한 수많은 느와르 영화들이 <대부>의 가공품 역할을 해온탓에, 나는 그 가공품에 너무 익숙해져서 정작 원재료인 <대부>를 만나자 '별 다를거 없잖아-' 하는 실망감을 느꼈던 것이다. 그러나 분명한것은 내가 좋아하는 모든 느와르 영화의 시작에는 <대부>라는 작품이 있었다는 사실이고, 그것이 <대부>가 위대한 작품이라 칭송받는 이유일터였다.
모든 로맨틱코미디의 원전은 <오만과 편견>, 모든 환상문학의 원전은 <백년동안의 고독>, 그리고 모든 느와르 영화의 원전이 바로 이 <대부> 였다. 절대정신으로 군림하는 보스, 믿었던 부하의 배신, 암흑의 길로 들어서게되는 엘리트 청년, 적에 의해 희생당하는 사랑하는 여자, 덫을 놓고 서로 서로 벌이는 음모. 내가 숱하게 봐왔던 느와르 영화의 모든 클리셰가 <대부>안에 모두 담겨있었다.
고전이 고전이 이유는, 결국 고전 이후의 작품들은 모두 고전의 변주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전에 없던 새로운 내용과 형식, 그리고 그것이 오래도록 원전은 물론이거니와 변주를 통해 사랑받을 수 있을때 그것은 '고전' 이라 다시 칭해진다. 그러니 고전은 위대한것이다. 숱한 변주의 내용들이 모두 이 고전에 집약되어 있으니 말이다. 인생은 짧고, 시간은 유한하니, 세상의 모든 작품을 볼 수 없을바에는, 세상의 모든 작품들이 나온 뿌리인 고전을 읽는 것이 현명한 일임은 말할 것도 없다.
게다가 고전은 새로운 창작의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지 않은가. 이미 수많은 고전의 가공품들이 나왔고 나오고 있다는것이 그 증거이다. 가지로 부터 나온 것들은 그 자체로는 훌륭할 수는 있지만, 새로운 가지를 뻗기는 어렵다. 하지만 뿌리는 다르다. 무수히 새로운 가지를 뻗어낼 힘을 내포하고 있는것이다. 그러니 가지에 매달리며 감탄하기보다는, 뿌리를 탐색하고 그 뿌리를 통해서 스스로가 새로운 가지를 뻗어내는것이 훨씬 창조적인 결과를 맺을 수 있다.
<대부>를 보면서, 새삼스레 '고전의 중요성' 과 '고전의 위대함' 을 깨달았다. 최근 이지성의 <리딩으로 리드하라>라는 책을 보면서 고전읽기에 도전중인데, '뿌리' 로부터 나오는 생각의 힘과 창의성의 발단이 되는 고전의 가치를 <대부>를 통해 다시 발견하게되었다. 오래토록 많은 사람에게 칭송받는 이유는 분명하다. 그만큼 두고두고 뽑아낼 요소들이 많기 때문이다. 몸에 좋은 약은 쓰듯, 원전은 거칠기 마련이다. 그동안 입맛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본질을 거부해온건 아닌지, 어리석음을 반성해본다. 고전을 더욱 가까이해야겠다. 이제는 조금, 왜 이렇게 사람들이 고전의 가치를 높게 평가하는건지 알것도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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