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구장애가 제법 완치되어 엄마에게 기념(?)으로 삼겹살을 먹고싶노라고 졸랐다. 엄마는 예의 '업자주제에 고기를 먹으려들어!' 라는 눈빛으로 쏘아보았다. 할 수 없이 일단 깨갱했다. 하지만, 도저히 포기가 안되서 다시 '엄마 나 진짜 삼겸살 너무 먹고싶어' 라고 엉엉댔고, 엄마는 이런 내가 불쌍했는지 '옛다' 라는 표정으로 카드를 던져주며 '싼걸로 조금만 사다먹으라' 고 당부했다. 잇힝. 결국 그리하여, 오늘 그렇게 그리고도 그리워했던 삼겹살을 사서 먹게 되었다.
아무도 없는 집에, 라디오를 켜놓고, 삼겹살을 굽노라니 행복해서 눈물이 다 날것만 같았다. 라디오에선 신승훈의 <오늘같이 이런 창밖이 좋아>가 흘러나왔고, 나는 노래를 따라부르며 눈물을 글썽여보였다. 드디어 삼겹살을 다 굽고 먹는 시간, 설레는 마음으로 한 점 한 점 주워먹는데 라디오에서는 '혼자 비오는 날 삼겹살을 먹는 여자를 위한 맞춤곡' 이라도 틀듯, 귀에 쫙쫙 감겨오는 김태우의 <사랑비>가 흘러나왔다. 그의 청량한 목소리가 나의 소화를 자극해 나는 몸까지 흔들흔들 거리며 고기를 먹었다. 햐아, 마지막으로 사이다 한잔까지 먹어주자, 온 몸에 가득 행복함이 퍼져내렸다.
라디오를 듣노라니 기분이 좋아져서, 집안일을 좀 하기로 했다. 양희은의 <사랑 그 쓸쓸함에 대하여>를 따라부르며 설거지를 했고, 쿨의 <슬퍼지려 하기전에>와 타샤니의 <경고>를 들으며 청소기를 돌렸다. 라디오에서 들려오는 사람들의 사연, 이를테면 혼자 피자와 맥주로 저녁을 하고있다는 LA의 모 청취자라던가 치즈쿠키를 구우며 라디오를 듣고 있다는 모 청취자, 은 내게 일상의 소소한 즐거움을 떠올리며 미소를 지어보이게 하기 충분했다. 아, 다들 저렇게 사는구나. 뭔가를 먹으면서, 라디오를 듣고, 나 처럼 행복해져서는 사연을 보내는구나.
맛있게 먹고, 청소 및 정리도 쫙 다하고, 다시 라디오를 들으면서 커피를 마셨다. 아, 정말이지 완벽한 오후의 만찬이 아닌가! 라디오에서는 마지막곡으로 한동준의 <너를 사랑해>가 흘러나왔다. 마지막까지 완벽한 선곡초이스라고 생각했다. 어우어우어워어어~ 너를 사랑해~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고, 노래를 한 소절 따라불렀다. 아, 비가 와서 무척이나 감성적이 되는 오후. 비오는 목요일, 백수라서 집에 있는게 행복해지는 하루다. 아, 백수라서(라도) 행복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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