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체른에서 인터라켄으로 가던 길이었다. 기차창밖으로 소떼가 풀을 뜯고, 달력에서나 봤을법한 그림들이 계속해서 나오는.. 스위스는 정말이지 그런 나라였다. 그래서 유럽여행중에 처음으로, 즉흥적으로 기차에서 내리는 모험을 감행했다. 친구나 나나 해외여행 초보였고, 이미 날은 저물어서 다음기차가 온다는 확신도 없었지만.. 눈앞에 펼쳐진 환상적인 호수를 보고도 지나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누가 먼저랄것도 없이 기차에서 내리자마자 호숫가로 뛰어갔다. 그리고 연실 '우와 우와 우와' 하고 감탄을 내 뱉었다. 천국과도 멀지 않을것만 같은 아름다운 풍경이었다. 청록빛 물위로 비치는 그림자와 그 위를 떠나니는 몇 마리의 새들은 정말이지 한 폭의 그림같았다.
성수기도, 유명한 역도 아니었던지라 호수 주변엔 나와 내 친구 둘 뿐이었다. 우리는 물가에 앉아서 서로 아무말도 없이 앉아있었다. 말 따위를 입으로 내뱉어서 지금 보고 있는 풍경이 현실이라는것을 인식하고 싶지는 않았다. 저 멀리, 저 높이, 시선을 돌려 주위를 둘러보기에도 바빴다. 그리고 이 호수에 아무생각없이 뛰어내린 우리의 용기가 자랑스러웠다. 다음기차가 오지 않는다해도 좋아. 이 풍경을 봤다는것으로 충분히 만족해. 우리는 서로를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래도 다행히 기차는 왔다. 어느새 추위에 코는 빨개져 있었고, 배는 고파왔지만, 그래도 이름모를 스위스 호수에서의 추억은 마음을 훈훈하게 지펴주고 있었다. 정작 목적지인 인터라켄에 가서는 저녁을 잔뜩먹고 일찍 잠이 들었다. 여행은 그런것이었다. 의도치 않은곳에서 예상치 못한 행복이 찾아오는.. 마치 인생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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